삶과 문화

어느 악장 이야기

浩溪 金昌旭 2011. 2. 7. 18:11

국제신문 2006.10.26

 

 

김창욱의 음악의 날개위에 <16> 어느 악장 이야기
음악 열정 하나로 굴지의 오케스트라 이끈 젊은 악장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삽화 = 권용훈
오케스트라에서 악장(樂長, concert master)은 대개 제1바이올린 연주자 중에서 선임된다. 악장은 단원들의 실질적인 대표자로서 단원과 악기를 조율하는 지도자적 위치에 선다. 아울러 그의 권위는 무대에서 지휘자와 악수를 나누는 유일한 단원이라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연주석 맨 앞줄 선두를 차지한 악장은 지휘자 다음으로 청중의 관심을 끈다. 화려한 음색과 눈부신 기교로 언제나 악곡의 중심선율을 맡는 제1바이올린 파트를 주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간 오케스트라에서의 악장은 눈에 띄는 영광보다, 오히려 드러나 보이지 않는 비애를 더 많이 경험한다.

40대 초반의 정성철(인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악장) 씨는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 지금까지 줄곧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유·소년기에 이미 즐겨 연주무대에 섰고, 전국 단위의 음악콩쿨에서 대상과 특상을 연거푸 탔다. 그런 그가 음악을 전공하고자 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아들의 의지를 완강하게 반대했다. 그의 집안은 의·약사 가문(조부는 한의사, 부친은 약사, 모친은 의사였고, 현재 형과 동생은 의사)이었고, 애써 어려운 길을 가려는 아들의 뜻이 부모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 까닭이었다.

의·약대에 갈 성적이 안 되었던 탓에, 그는 부득이 경영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적만 두었을 뿐 대부분 음악학과 강의를 들었다. 그 덕에 음악과목은 항상 A+를 받았으나, 동시에 두 번의 학사경고도 받아야 했다. 졸업 후 그는 실내악단(부산현악4중주단, 동아실내합주단)과 오케스트라(부산관현악단, 뉴필하모닉 등)에 들어가 바이올린 수석으로 연주활동에 힘썼다. 늦깎이로 대학원(동아대)에서 음악을 전공한 그는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는 즐겨 명멸하는 이전의 악단과 달리, 생명력 있는 연주단체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1996년 몇몇 젊은 연주자들을 모아 '부산스트링스챔버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여기에는 박종휘(지휘) 최영준(첼로) 이준호(첼로) 정명호(콘트라베이스) 등 18명이 참여했다. 그는 대연동 현대오피스텔 지하 1층에 마련한 연습실 운영은 물론, 연주회 때마다 소요되는 적잖은 비용 일체를 책임져야 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벌이(개인레슨)로 자력갱생을 시도했다.

그런데 단원 숫자가 36명으로 늘어나 좀더 넓은 연습실이 필요했다. 99년에는 좌천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즈음, 단원들에게 소액의 연주료가 지급되면서 몇 년 사이 빚이 2억5000만 원까지 늘어났다. 그것은 그를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0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레슨노동에 시달리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 카드 대출을 받거나, 사채를 끌어 일수로 갚아야 했다. 그래도 늘어난 빚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카드사로부터 온갖 굴욕을 당해야 했고, 연습실에 비치된 악기들마다 레슨학생과 학부모가 보는 앞에서 차압딱지가 붙여졌다. 이미 연습실은 단전·단수된 터였다. 마침내 그는 최후의 후원자였던 아버지께 손을 벌려야 했다. 아버지는 비록 못마땅한 아들이었으나, 눈을 질끈 감고 상당 액수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

2001년 '스트링스'가 1000만 원의 부산시 문예진흥기금을 처음 받고, 이후 연평균 300만~5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으면서 그는 숨통이 겨우 틔었다. 2003년 사단법인 예술전문단체가 된 악단은 올해 창단 10주년을 맞으면서 정규 2관 편성의 풀 오케스트라로 확대·개편되었다. 인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로 이름도 바꾸고, 새 지휘자(장진)를 비롯한 다수의 후견인을 영입했다. 그 결과, 지난 9월 '인코리안, 운명을 말하다' 연주회에서 악단은 '규모에 비해 놀라운 음향'(안일웅 연주평)을 창출해 냈다.

이제 '인코리안'은 부산음악계가 주목할 만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게 된 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썩어간 '한 톨의 밀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악평론가 kcw66@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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