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권용훈 | |
그런데 간혹 오페라 무대에서는 성악가들의 어설픈 연기가 오히려돋보이는 경우가 있다.
어느 날 풋치니의 '토스카'(Tosca) 공연이 열렸다. 토스카는 카바라도시와 연인 사이인데, 둘은 '완전 사랑'에 빠져 있다. 그러나 카바라도시는 옛 친구인 정치범 안젤로티를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경시총감 스카르피아에게 쫓긴다(사실 스카르피아는 토스카를 짝사랑해서 틈만 나면 그녀를 카바라도시로부터 빼앗으려 호시탐탐 노리는 자이다).
마침내 스카르피아에게 붙잡힌 카바라도시는 제2막에서 토스카가 보는 앞에서 극심한 고문을 당한다. 토스카는 연인의 신병을 인도받기 위해서 스카르피아에게 돈을 주려 하지만, 스카르피아는 자신이 요구하는 것이 다름 아닌 그녀임을 고백하고, 그녀의 몸을 정복하지 않고서는 카바라도시를 풀어줄 수 없다고 협박한다. 토스카는 자신을 송두리째 바쳐서라도 연인의 목숨을 살리기로 결심한다. 흐뭇해 하는 스카르피아가 그녀의 몸을 탐하려 하는 사이, 토스카는 테이블 위의 칼을 집어 스카르피아의 가슴을 힘껏 찌른다.
이로써 제2막이 내리는데, 스카르피아 역을 맡은 성악가는 토스카의 칼에 찔려 고통 속에 신음한다. 그의 고통은 카바라도시가 당한 고문보다 훨씬 극심했다. 그는 온 무대를 휘저으며 몸부림을 쳤다. 그러다 끝내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마는데, 그의 대단한 열연에 객석에서는 박수갈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헌데 그가 가만히 실눈을 떠 보니, 자신이 죽은 위치가 하필이면 막이 내려오는 지점이 아닌가? 이미 죽은 그였기에 옴짝달싹 못하고 누워 있었지만, 그 짧은 순간 그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사이, 막은 어느새 코 앞에까지 내려왔고 그는 더 늦기 전에 무대 밖으로 나갈 뻔한 자신의 팔을 황급히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의 동작은 게 눈 감추듯 재빨랐다.
제3막에서는 카바라도시가 간수에게 끌려 나와 처형대에 선다. 병사들이 처형대에 묶인 그의 총살을 위해 발사 준비로 바쁘다. 긴장감은 절정에 달했고, 드디어 '땅!' 소리가 나와야 할 시점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총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조연을 맡은 저격수 병사들이 너무 긴장한 나머지 총을 쏘아야 할 지점을 놓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템포대로 음악은 진행되었고, 적당한 시기에 카바라도시도 쓰러졌다. 뒤늦게 총소리가 났지만, 이미 카바라도시가 쓰러진 이후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토스카는 쓰러진 연인에게로 한달음에 달려간다. 이어 놀라움과 슬픔에 오열하는 그녀를 체포하려 달려오는 스폴레타(스카르피아의 부하)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은 토스카는 임박한 스폴레타의 손을 피해 안젤로 성벽 위에서 몸을 날린다.
그런데 이럴수가! 토스카가 떨어진 무대 아래는 그냥 맨 바닥이었다. '쿵!'하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객석 저 편까지 들릴 정도였다. 안전을 위해 마련해 두었던 성벽 밑의 대형 쿠션을 청소 아줌마들이 연습 후 곧바로 치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순간 토스카는 이미 죽은 스카르피아나 카바라도시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페라 무대에서의 우스꽝스런 일은 심심찮게 벌어진다. 오죽했으면, 오랜 경험을 가진 오현명이 '오페라 실패담'이라는 책을 내기까지 했을까. 이러한 성악가들의 크고 작은 실수는 종종 비극이 희극이 되고, 희극이 비극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수한 성악가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 아닌가. 실수에 값하는 주변의 눈총을 온 몸으로 받아야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