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권용훈 | |
그러나 특정 소수의 귀족이건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건 간에 지난날 음악역사를 변화시킨 또 하나의 주역은 엄연히 수용자 청중이며, 그런 점에서 그들은 무대를 향해 박수나 쳐 주는 수동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다.
음악회 청중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진다. 먼저 순수하게 음악을 감상하려는 목적을 가진 청중이 있다. 이들은 음악을 감상하겠다는 분명한 의사를 가진 '자발적' 청중이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감상을 목적하지 않으면서 음악회에 참여하는 청중도 있다. 누군가의 이끌림에 의해서, 혹은 가지 않으면 모종의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참여하는 청중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을 우리는 '강요된' 청중이라 부른다.
강요된 청중은 연령이나 성별은 물론, 직업도 다양하다. 그리고 이들이 음악회의 청중으로 참여한 이유도 제각각이다.
그 가운데 대표선수 격은 뭐니뭐니해도 중·고생 청중이라 할 수 있다. 선량한 이들이 음악회를 찾는 때는 대부분 여름과 겨울방학 끝자락이다. 그 이유는 개학이 되자마자 숙제(음악감상문)를 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음악회가 시작된 이후에도 즐겨 같은 또래와 잡담을 하거나, 장난을 치거나, 객석을 넘나들며 자신들의 천진성을 한껏 뽐낸다. 이 같은 난만함은 누군가의 제지가 없는 한 공연의 막이 내릴 때까지 계속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절취된 음악회 티켓이나 팸플릿만큼은 빈틈없이 챙긴다. 그것은 음악교사로부터 공연참여를 인정받는 증명서인 까닭이다.
강요된 청중에는 음악회를 주최하는 연주자의 가족·친지도 있다. 여기에는 주인공의 어르신과 형제자매, 나아가 사돈의 팔촌이 포함될 수 있다. 그들은 주인공의 일거수 일투족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다. 연주도중 자칫 실수나 저지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다가도 연주가 끝나면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듯 소나기 박수를 보낸다. 음악회에 익숙한 청중은 휘파람을 불고, 거침없이 '앙코르!'를 연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옴니버스 형식의 음악회일 경우 주인공의 등장과 퇴장에 맞춰 그들은 밀물처럼 밀려오고 썰물처럼 쓸려 나간다. 오직 자신이 지지하는 주인공에게만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청중으로는 '럭셔리'한 아줌마 그룹이 있다. 상류계층의 그들은 여느 청중과 달리 음악회를 선택하는 안목부터 다르다. 그들은 주로 조수미나 사라장 같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연주가', 혹은 외국의 이름난 연주자나 악단의 음악회가 아니면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적게는 몇 만 원, 많게는 몇 십 만 원에 이르는 입장료라야만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장식만큼 값비싼 티켓을 스스럼없이 구입하는 그들에게 음악회는 일종의 사교공간이 된다. 남들과 차별화되고 상승된 신분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강요된 청중이다.
같은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도 적잖은 경우 강요된 청중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른바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 음악회에 참여한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는 것처럼 상대방의 음악적 의식에 참여해야만 그들도 자신의 의식에 참여해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음악사회의 생태를 위한 상부상조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건전한 음악문화를 꾀하려면 의당 자발적 청중이 많아져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강요된 청중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여 청중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음악회의 '여전한' 형식과 내용에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