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에서 서른 즈음,
서른에서 마흔 즈음,
마흔을 훌쩍 건너
지금은 쉰 즈음.
아, 살아온 나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어느 해 겨울이여!
김광석이 노래하는 ‘서른 즈음에’(강승원 작사, 작곡)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줄 알았다
설운 서른에 바라본 쉰은
너무 아득하여 누군가
손잡아 주지 않으면 못 닿을 줄 알았다
비틀거리며 마흔까지 왔을 때도
쉰은 저 만큼 멀었다
술은 여전하였지만
말은 부질없고 괜히 언성만 높았다
술에 잠긴 말은 실종되고
더러는 익사하여 부표처럼 떠다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몇 벗들은 술병과 씨름하다
그만 샅바를 놓고 말았다
팽개치듯 처자식 앞질러 간 벗을 생각하다
은근슬쩍 내가 쓰러뜨린 술병을 헤아렸고
휴지처럼 구겨진 카드 영수증을 아내 몰래 버리면서
다가오는 건강검진 날짜를 손꼽는다.
- 김수열, '쉰', 『생각을 훔치다』 중에서
김수열 시인 1959년 제주출생. 1982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어디에 선들 어떠랴』,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바람의 목례』, 산문집 『김수열의 책읽기』,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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