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동학 120주년이 되는 해. 민요 [새야 새야]는 갑오년 동학운동 때 즐겨 불렸다. 이 노래를 채보·편작한 채동선(蔡東鮮 1910-1953)은 근대시기 한국의 대표적인 엘리트 예술가이자, 일제에 저항한 거의 유일한 음악가였다. 그러나 한국전쟁기 때 피난지 부산에서 삶을 마감했다. 굶주림 때문이었다.
"한때 부두에서 그의 체력에 과중하게 육체노동을 했"고 "그의 가족이 부두에서 담배행상을 했"으며, "못먹어서 괴로왓고 괴로워서 병낫고 병으로 쇠진해가는 육신을 지탱할 영양을 주급치 못"했다. 윤이상, [빈사(瀕死)한 예술가-채동선씨의 작고에], 『부산일보』 1953년 2월 11일자.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창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아랫녘 새는 아래로 가고
윗녘 새는 위로 가고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손톱발톱 다 닳는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위여 위여 위여 위여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고부 녹두새야
윗논에는 차나락 심고
아랫논엔 메나락 심어
울오라비 장가갈 때
찰떡치고 메떡칠 걸
네가 왜 다 까먹느냐
네가 왜 다 까먹느냐
위여 위여 위여 위여 위여 위여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