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바위고개

浩溪 金昌旭 2014. 4. 11. 21:35

 

봄볕이 따사롭다. 이럴 때 언덕에 오르면, 왠지 모를 슬픔에 마음이 울컥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에 읽은 심점환 화백의 에세이 '바위고개'는 막연한 슬픔이 아니라, 그 명분이 뚜렷한 슬픔이었다.

 

이흥렬(李興烈 1909-1980)이 작사·작곡한 가곡 「바위고개」는 『이흥렬 작곡집』(1934)에 실린 노래다. 그는 숙명여대 음대학장을 지낸 바 있으며, 「어머니의 마음」, 「꽃구름 속에」, 「코스모스를 노래함」 등의 가곡과 동요 「섬집아기」를 남겼다. 2014. 4. 11 들풀처럼.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 옛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 바위고개 핀 꽃 진달래꽃은 / 우리님이 즐겨 즐겨 꺾어주던 꽃 /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 옛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 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집니다. 


메조 소프라노 정영자 님이 부르는 「바위고개」. 화면의 "백남옥"은 오기(誤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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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4. 08 (19) 


[토요에세이]

바위고개

 

우리 가곡 '바위고개'는 참 서러운 노래이다. '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라는 가사에 이르면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내 어릴 적 집안 친척들 중에는 우리 형제들에게는 조카뻘이 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보다 한참 나이 많은 사람이 많았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확연히 친척들에 비해 유독 우리 집만 가난했으며 아버지는 문중 어른들이 모일 때면 서열에 관계없이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계셨다. 그들 또한 예사로 우리 식구를 무시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그러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해까지 아버지는 가난과 알 수 없는 쓸쓸함을 그림자처럼 달고 사셨는데 그 분위기에 일찌감치 익숙했던 나는 당신을 평생 짓눌렀던 어둠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랐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일곱 살 아버지, 울며 넘었던 고개

집안의 비밀 품은 설움의 그 사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십 수 년 지난 어느 저녁, 큰형님의 호출로 둘째형님과 나는 어머니 댁으로 불려갔다. 어머니 무릎께에는 표지가 깨끗하고 두툼한 족보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먼저 도착한 큰형님은 이제 우리도 문중 족보에 정식으로 이름이 올랐으니 올해부터 크고 작은 문중 대소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작은형님은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었던 듯 무덤덤한 반응이었지만 나는 깜짝 놀라 여태까지 우리가 족보에 오르지 못했던 이유를 따져 물었다. 자세한 건 몰라도 된다며 큰형님은 먼저 일어섰고 작은형님도 마당으로 나가 담배만 피워 물었다. 며칠 후, 나는 어머니 홀로 계신 본가에 다시 들렀고 화단에 물을 주고 계시던 어머니를 방안으로 떠밀다시피 하고 마주 앉았다. 왜 우리가 여태 족보에 오르지 못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이젠 다 지난 일이라며 어머니가 들려주신, 당신 기억에도 희미한 이야기의 대략은 이런 것이었다.


 


오래전 문중 어른 한 분이 자기 자식들보다 더 어린 가난한 집 처자 하나를 첩으로 사 들였단다. 그 흔한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본처와 본처에게서 난 아들, 딸들은 쉴 새 없이 어린 첩을 구박했고 견디다 못한 어린 첩은 자신이 낳은 두 아들을 두고 스스로 먼저 세상을 버렸다. 그리고 어느 해 봄 기력이 쇠약해진 그 어른마저 세상을 등지자 본처와 그 자식들은 그때까지 부엌데기로 온갖 설움을 받던 어린 첩의 두 아들을 지체 없이 달랑 맨몸으로 내쫓았단다.

 

죽은 첩의 아들이었던 아버지는 그때 일곱, 작은아버지는 다섯 살이었다. 쫓겨난 어린 아버지는 다섯 살 동생을 등에 업고, 고갯마루를 몇 개나 넘고 도랑을 건너 어찌어찌 외갓집에 찾아갔는데 외갓집도 너무 가난하여 동생과 함께 어느 부잣집 머슴살이를 시작했단다. 어린 나이에 가축처럼 일하고 먹고 잤지만 의붓 형제들에게 수시로 부지깽이로 맞던 때보다 행복했단다. 그 때문인지 작은아버지는 평생 화병을 달고 사시다 사십을 갓 넘긴 한참 나이에 돌아가셨다.

 

이제 와 그 옛날 집안에서 내쫓은 첩의 자손들을 정식으로 문중의 일원으로 허락하는 그 알량한 자비가 너무 가소롭고 분해서 정말이지 나는 성(姓)을 갈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 늙으신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나는 참 많이 울었다. 이제 어머니마저 떠나신 지 이십여 년, 어쩌다 야산 중턱 진달래꽃이라도 보게 되면 두 분 생각에 가끔씩 주책없이 눈시울이 붉어진다. 일곱 살 어린 아버지가 동생을 업고, 울며 넘던 고갯길에도 진달래가 하염없이 피었으리라. 생각하면 참 서러운 봄날이다.


심점환 /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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