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웬 쥐가 이리 많습니까"

浩溪 金昌旭 2011. 1. 27. 12:13

 


얼마 전 변훈(1926~2000) 선생의 10주기 추모음악회에 다녀왔다. '겨레에 바치는 노래'라는 타이틀로 중앙성당 본당에서 열렸다. 부산과 서울에서 비약적인 활동을 펼치는 젊은 성악가들이 차례로 등장했고, 그들 노래에 대한 객석 반향은 매우 뜨거웠다.
 
'작곡가 변훈' 하면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한국전쟁기였던 1952년 피난지 제주도에서 작곡한 '떠나가는 배'(양중해 작시)가 그것이다.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라는. 청춘남녀의 이별을 센티멘털한 정조로 그린 이 노래는, 실은 실향민(함경도 함흥 출신)이었던 작곡가의 주관적 감정이 투영된 작품이다.
 
변훈 선생 10주기 추모음악회의 감회
 
그럴 뿐만 아니라, 변훈은 민족의 분단과 겨레의 현실을 노래한 가곡을 적잖이 남겼다. '…이 강물은 끝없이 흐르고 흐르는데/ 우리 겨레 어이하여 갈라졌는가/ 맺힌 한아 이제는 흘러가라/ 강물따라 하나로 흘러가라'라는 '한강'(정공채 작시)을 비롯, '임진강', '갈매기야 우는구나', '오랜 기도' 등이 그러하다. 또한 "고아원을 떠날 때 너와 나와 손잡고 / 굳세게 살자고 굳세게 살자고 눈물로 맹세했지 / 어이하여 너는 동두천의 밤 꽃이 되어…"라는 노랫말의 '순이야'(박효석 작시)도 빼놓을 수 없다. 분단 현실의 압제에 굴종하는 소녀의 아픔을 오롯이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변훈은 홍난파·현제명으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한국가곡의 음악어법을 극복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즉 그는 사랑·고향·자연을 주제로 한 노랫말, 주요 3화음에 기초한 서양식 화성체계, 장절(章節) 형식에 의한 선율의 서정성과 같은, 이른바 '정다운 가곡'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1952년 부산에서 초연된 대표작 '명태'(양명문 작시)가 그렇다. "… 짝짝 찢어지는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헛 명태라고/ 헛,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와 같이 익살스런 자유시를 노랫말로 선택한 점, 부가화음으로 3화음의 정형성을 탈피하려 한 점, 2박자에 셋잇단음표를 즐겨 씀으로써 리듬변화를 꾀한 점, 일관작곡(一貫作曲) 형식에 파를란테(parlante·말하듯이 노래하는 기법)와 포르타멘토(portamento·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옮겨 갈 때 미끄러지듯이 연주하는 기법)를 활용함으로써 음악의 사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변훈은 김순남 이래 최고의 음악적 리얼리스트로 평가될 만하다.

이 같은 그의 음악적 경향은 1982년에 쓴 '쥐'(김광림 작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그것은 예술지상주의, 혹은 순수음악주의가 여전히 지배하는 오늘날, 음악으로서도 타락한 정치현실을 풍자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나님, 어쩌자고 이런 것도 만드셨지요/ 야음을 타고 살살 파괴하고, 잽싸게 약탈하고, 병폐를 마구 살포하고 다니다가/ 이제는 기막힌 번식으로 백주에까지/ 설치고 다니는 웬 쥐가 이리 많습니까 … 이러다간, 나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교활한 이빨과 얄미운 눈깔을 한 쥐가 되어 가겠지요/ 하나님, 정말입니다. 정말입니다!"

인사청문회 광경, 음악의 역할이란?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 광경을 떠올렸다. 대한민국에서 총리나 장관이 되려면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정도는 두루 갖추어야 할 필수 레퍼토리임을 절감했다. 여기에 전직 국회의원의 생활 보장과 품위 유지를 위해 매월 120만원을 사망 때까지 지급한다는 '헌정회 육성법 개정안'이 통과됐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재적의원 191명 중 187명이 지지한 법안이다. 재직기간이 1년 미만인 자도, 금고 이상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자도, 징계로 제명을 받은 자도 65세 이상의 전직 국회의원이라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국민의 혈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안의 압도적 찬성에는 여야(與野)도, 보혁(保革)도 없었다. 완전무결, 일심동체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우리네 곳간에는 새삼 쥐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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