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의 '음악의 날개 위에' ⑨
강의 경력이 쌓일수록 설움과 비애도 늘어나
『국제신문』 2006. 9. 18 (19)
음악평론가
K씨는 대구에서 활동하는 작곡가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작곡을 업으로 삼기에는 애시당초 불가능한 까닭에, 그는 오랫동안 음악대학(혹은 음악학과)에서 시간강사로 일해 왔다. 여기서 그는 서양음악이론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화성학·대위법·악식론 등을 주로 강의했다.
자칫 어렵게만 느껴지는 음악이론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그의 명쾌한 강의는 가히 학생들에게 '인기짱'이었다. 덕분에 그는 대구·경북뿐만 아니라 부산·경남지역 대학들로부터 수없이 '러브콜'을 받았고, 경력 22년째인 오늘도 주당 40시간에 이르는 시간강사로 이름을 드날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강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신분은 여전히 비정규직 시간강사에 지나지 않는다.
즉 대학강사는 법률상 일용잡급직으로 분류돼 국민건강보호법·고용보호법·국민연금법 등 최소한의 제도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 게다가 1년의 절반은 방학이요, 언제 짤릴지 모르는 심리적 불안감 속에 일상을 산다. 그런 까닭에 시간강사는 자신의 강의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이에 준하는 설움과 비애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어느날 K씨는 강의를 마치자 마자,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일을 보고 막 나오려는 찰라, 얇은 베니아 판으로 가려진 여자 화장실 쪽에서 두 여학생의 대화가 들려왔다.
"교수님이야."
"아니야, 선생님이야. 내가 과사(학과 사무실)에서 조교한테 물어 봤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조금 전 자신의 강의를 들었던 초년생(1학년)이었고, 강의를 맡았던 담당자가 교수냐, 강사냐를 두고 잠시 설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한 그는 화장실을 빠져 나갈 수 없었다. 그는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이때 그는 전임교수를 '교수님', 시간강사를 '선생님'으로 학생들이 각각 구분해서 지칭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느 겨울날 오후였다. K씨는 모처럼 기원(棋院)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핸드폰이 요란스레 울었다. 계단으로 내려가 전화를 받는데, 거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등록하고 출석만 하면 졸업시켜 준다고 해 놓고 학점은 왜 안 주능교?"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우리 애가 등록할 때 학과장이 전화로 그랬잖능교."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공부를 해야 학점이 나오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댁의 자녀가 누굽니까?"
"나는 ○○엄만데요. 학과장한테 전화하니까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라던데요."
"그건 안됩니다. 그 학생은 출석만 했지, 시험 답안지를 백지로 냈습니다."
"안되겠다. 학과장한테 다시 얘기해야지."
그녀는 전화를 뚝 끊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다시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학점 안주면 우리 애는 학교에 못 다닙니더. 세상에 학교도 사기 치나?"
"무슨 말씀입니까? 대학에서 공부 안하면 학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온전한지 두고 보입시더."
또 다시 전화가 뚝 끊겼다. 한참이 지났다. 이번에는 학과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선생님, 학교 사정 잘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그냥 학점 주시지요."
"안됩니다. 그 학생은 매번 잠만 자고 시험은 두 번 다 백집니다."
"그냥 주기로 하십시다."
"안됩니다. 그건!"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기고 난 며칠 뒤에 학과 조교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생님, 커리큘럼이 바뀌면서 선생님 수업이 없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순간, ○○엄마가 남긴 말이 자꾸만 그의 귓전에 맴돌았다.
"선생님은 온전한지 두고 보입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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