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의 '음악의 날개 위에' ⑬
찌르고 자르고 내리꽂는 저 장엄한 의식뒤에
『국제신문』 2006. 7. 3 (19)
음악평론가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는 음악적 의례를 위한 사제(司祭)이며, 그가 휘두르는 지휘봉은 그 권위를 상징한다.
연주회가 열리기 전, 서로 이름도 성도 모르는 청중들이 약간의 소란을 피우면서 객석에 자리를 잡는다. 이 무렵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차례로 무대 위에 오른다. 다소간 시끄러운 연습절차가 끝나면 이윽고 악장이 입장하고, 그의 지시에 따라 조율이 끝나면 마침내 연미복을 차려 입은 지휘자가 무대에 등장한다. 그가 지휘봉을 드는 순간, 엄숙한 음악적 의식이 거행된다. 객석에서의 모든 잡담이나 유희도 이제 그 성스러운 '예배의식'을 방해하는 악마적 존재가 된다.
지휘자가 번쩍 치켜 든 지휘봉은 마치 칼이나 창을 닮아 있다. 그는 지휘봉을 들고 찌르고 자르며, 때로는 내리 꽂는다. 이러한 모습은 토스카니니나 카라얀처럼 독재형·군림형·카리스마형 지휘자에게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어쩌면 그런 것이 전형적인 지휘자의 이미지이며,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릴 수 있는 지휘자의 매력이자 마력인지도 모른다.
화려한 무대, 마술처럼 현란한 지휘술 때문일까. 오늘날 부산에는 지휘자를 꿈꾸는 이들이 적지 않으며, 연주회마다 새로운 지휘자의 등장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지휘자가 많아지면 자연히 연주회 횟수도 늘어나기 마련이고, 그것은 풍성한 음악문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퍽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휘자가 많아서, 아니 제대로 된 지휘자가 없어서 오히려 탈이 생기는 경우도 가끔씩 보게 된다. 일정한 수련기를 거치지 않은 얼치기 지휘자들 탓에 음악의 맛과 멋이 덜해지기도 하고, 그런 까닭에 연주회 밖으로 청중을 내모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득 오래 전에 원로께 들었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때는 1950년대 한국전쟁 시기였다. 문화중심지 부산에서는 전쟁통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음악회가 열리곤 했다. 정규 공연장이 없었던 까닭에 예식장이나 극장, 학교강당 등이 주로 연주무대로 사용되었다. 지금처럼 연주회가 자주 열리지는 않았으나, 달리 즐길 만한 문화가 없었으므로 공연장에는 연주회 때마다 청중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어느날 관현악 연주회가 열렸다. 무대에는 연주자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았고, 마침내 지휘자가 등장했다. 제비꼬리를 한(연미복을 입은) 지휘자의 위풍당당한 등장에 장내는 그를 반기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의기양양한 지휘자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가능한 멋진 포즈로 지휘를 시작했다.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음향이 장내를 가득 메웠고, 청중은 귀를 쫑긋 세워 음악에 침묵했다. 그때였다. 무대 아래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몇몇 중 하나가 갑자기 일어나서 소리쳤다.
"지휘자 양반, 제발 다리 좀 치워 주시오!"
그는 단상의 지휘자 다리 사이로 연주모습을 구경하던 관객이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지휘자 다리가 자꾸만 왔다갔다하는 통에 구경거리에 차마 몰두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기실 그 관객은 음악을 듣기보다 현악기 주자의 활 켜는 솜씨를 더 보고 싶었으리라.
그로부터 반 백년이 지난 오늘 부산의 음악환경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악곡들을 폭넓게 연주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많아졌고, 그들의 연주를 청취하고 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귀명창'이 많아졌다. 그것은 웬만한 연주력으로는 박수는커녕 손가락질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는 사실을 뜻한다. 지휘자가 어설프게 카라얀 흉내를 내다간 '다리를 치워 달라'는 요구를 넘어 '무대를 내려와 달라'는 고함소리를 듣게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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