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7>
『인저리타임』 2017. 11. 3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스물 여덟의 꽃다운 나이에 죽었다. 수면제에 의한 약물과다복용이 사인(死因)이었다. 「소녀와 가로등」, 「님 떠난 후」,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 등을 잇따라 힛트한 장덕(1961-1990)이 바로 그녀다. 이은하가 작사·노래한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1986)도 그녀가 만든 것이다.
날 사랑하지 말아요
너무 늦은 얘기잖아요
애타게 기다리지 말아요
사랑은 끝났으니까
그대 왜 나를 그냥 떠나가게 했나요
이렇게 다시 후회할 줄 알았다면
아픈 시련 속에 방황하지 않았을 텐데
사랑은 이제 내게 남아 있지 않아요
아무런 느낌 가질 수 없어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1987년 쯤이다. 당시 대한민국 육군 제2군사령부 정훈국 문선대(문화선전대)에 파견되어 비약적인 활약상을 보일 때였다. 우리는 노래·춤·연극 따위의 문화공연을 통해 사령부 예하 부대, 그러니까 충청도·경상도·전라도 장병들에게 사기진작과 여흥을 책임 지는 임무를 수행했다.
문선대원은 모두 20여 명 정도였고, 이들은 입대 전 공연예술 쪽의 대학을 다녔거나, 최소한 밤무대에서 기타나 키보드 따위로 좀 놀았던 자들이었다. 민간인 시절, 화류계에 잠시 몸 담은 적이 있었던 나도 대한 육군의 촘촘한 레이더망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물론 남자가 할 수 없는 역할은 외부에서 수혈했다. B급 여배우 2명, B급 여가수 2명이 그들이다.
우리는 본격적인 공연에 나서기에 앞서, 2개월 정도 밤낮없이 연습에 매진했다. 노래를 하라면 노래를 하고, 춤을 추라면 춤을 추었으며, 연극을 하라면 연극도 했다. 2달 간의 연습이 모두 끝나면, 우리는 사령부 대연병장에 무대를 셋팅하고 시연회를 열었다. 여기에는 별넷의 군사령관을 비롯해서 수많은 장성급·영관급·위관급 장교와 사병들이 빼곡이 자리를 메웠다.
시연회가 끝나면, 우리는 단양·여수·영광·남원·울산·영천 등지의 내륙과 해안을 사방팔방, 종횡무진 누볐다. 해당 부대 연병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대형 군용트럭 2대에 실린 철제 구조물을 내리고, 무대와 음향, 조명장치와 악기를 차례로 셋팅한다. 두어 시간 동안의 작업이 끝나면, 간단히 저녁을 먹고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한다. 의상을 챙기고 얼굴에는 조명빨이 잘 받을 정도로 분장을 한다.
2시간 정도의 공연이 끝나면, 어렵사리 셋팅한 무대·음향·조명장치를 아낌없이 해체하고, 이들을 트럭 두 대에 나눠 차곡차곡 적재한다. 적재작업은 거의 밤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끝나고, 우리는 부대에서 마련한 라면으로 허기를 달랜다. 그리고 자고 나면, 이튿날 또 다른 부대로 이동한다. 그러니까 문선대 활동이란, 과거 유랑악극단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무렵, 나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을 라이브로 처음 들었다. 지금은 이름을 잊었지만, 노래를 부른 B급 여가수는 미모가 매우 빼어났을 뿐 아니라 몸매의 곡선도 유려했다. 율동을 할 때마다 원피스가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고, 옆구리가 갈라진 옷자락 사이로 희고 긴 넓적다리가 보일락말락했다.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탄력적인 베이스 기타의 음향과 색다른 리듬 감각이 유난히 돋보이는 노래다. 그러나 나는 이 노래를 들을라치면 사랑과 이별,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느끼기 보다 빼어난 미모와 몸매를 가진, 옆구리가 갈라진 원피스를 입은, 보일락말락한 넓적다리의 B급 그 여자 가수가 떠오른다. 아주, 가끔씩.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김창욱 음악평론가·부산시의회 정책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