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14>
『인저리타임』 2017. 12. 29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을 노래한 알프레도 크라우스.
내가 다시 들은 것 같네
야자수 아래 숨어서
그 목소리는 부드럽고 낭랑한
마치 산비둘기 노래 같네
오, 매혹적인 밤이여
숭고한 황홀경이여!
오, 매혹적인 추억이여
광적인 취기여, 달콤한 꿈이여!
프랑스의 보석 조르주 비제(G. Bizet 1838-1875)는 「카르멘」, 「진주 조개잡이」 같은 빛나는 명작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서른일곱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진주 조개잡이」 가운데 '귀에 익은 그대 음성'(Je crois entendre encore)은 겨울바다에 나뒹구는 조개껍질이나, 쓸쓸한 대지에 홀로 선 사내의 고독감이 묻어난다.
세일론 섬의 진주 조개잡이 나디르는 어린 시절 여친이자 브라만교 여사제 레일라를 사랑한다. 조개잡이들이 바다에 나가 조개를 잡는 동안, 바위 위에서 그들의 안녕을 기도하는 레일라. 금지된 사랑으로 열병을 앓던 나디르가 레일라를 향해 부르는 아리아다. 스페인이 낳은 테너가수 알프레도 크라우스(A. Kraus 1927-1999)의 처연한 열정이 돋보이는 노래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근래 세상을 떠난 이들이 떠오른다. 다들 고통의 바다를 뜨겁게 달궜던 분들이다.
지난 1일, 부산대 사회학과의 윤일성 교수께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부산지역 개발사업에 꾸준히 반대 목소리를 내왔던 엘리트 학자였는데, 언젠가 중앙동의 한 비어홀에서 맥주를 얻어 마신 적이 있다. 훤칠한 키에 깡마른 체구, 그러나 더없이 맑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지난 4월 22일에는 국제신문 논설주간을 지냈던 최화수 작가께서 별세했다. 음악풍경의 토크콘서트에 초대손님으로 모신 적이 있었다. 중학시절 「트로이메라이」(슈만)를 듣고 생애 처음으로 음악에 감동한 일, 미화당·오아시스 등의 고전음악감상실을 순례하며 음악에 탐닉한 일, 가톨릭 장례식에서 들려온 성가대의 「라크리모사」(모차르트)를 듣고 종교에 귀의한 일 등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 뿐 아니다. 작년 2월 2일에는 중앙대 창작음악학과의 노동은 교수도 먼 길을 떠났다. 내가 군에서 갓 제대한 1988년, 아마도 늦가을쯤이었나 보다. 우연찮게 나는 그의 『한국 민족음악 현단계』(세광음악출판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근대 한국 서양음악계의 모순과 왜곡을 처음으로 알게 한 책이었다. 이후 그의 글을 빠짐없이 챙겨 읽으면서 내 피도 점차 뜨거워져 갔다. 이로 말미암아, 1993년 나는 『일제 팟쇼체제기의 친일적 음악경향에 대한 연구: 매일신보(1930-1945)를 중심으로』라는 석사논문을 썼고, 그 첫 장에 애써 다음과 같은 헌사를 남겼다.
"친일파와 친일문학에 대한 논문과 저서는 비교적 눈에 띄지만, 음악분야의 본격적인 연구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체로 이 분야는 『한국 민족음악 현단계』를 쓴 노동은에 의해 고독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을 따름이다. 그의 전술(前述)한 사전작업이 없었던들 논자의 이 같은 논문은 성립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신학기가 시작된 어느 날, 모처럼 노 교수께서 전화를 주셨다. 힘없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기까지 했다. 펄펄 날던 예전의 노동은 교수가 아니었다. 그간 몇 차례 수술을 받았고, 명예교수로 재직하는 대학도 못 나가는 형편이라 했다. 그러면서 먼구름 한형석 선생의 『광복군가집』을 복사해 주기를 내게 부탁했다. 그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세월의 무상함과 삶의 허무감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 모레면, 한 해가 저물고 또 한 해가 떠오른다. 새해에도 곁을 떠나 먼 길을 가는 이가 없지 않겠지. 가슴을 저민들, 땅을 치며 통곡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래서 우리는, 깊이 사귀지 않아야 하네.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언제든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악수를 나눠야 한다네(조병화, 공존의 이유).
귀에 익은 그대 음성
김창욱 음악평론가·부산시의회 정책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