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다. 불길은 법조계, 문화계, 재계, 종교계, 교육계 등으로 순식간에 번지고 있다.
2014년 경찰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성범죄(성폭력·성매매·성풍속) 혐의로 검거된 6대 전문직 종사자가 213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강간·강제추행 1137명, 성매매·알선·중개 499명, 간음 249명, 음란물 제조 및 유포 124명, 몰카 촬영 81명, 통신 매체 이용 음란 23명, 공연음란 17명, 성적 목적 공공장소 침입 2명 등이다. 직업별로는 의사가 739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종교인 578명, 예술인 492명, 교수 191명, 언론인 100명, 변호사 32명 순이었다. 요컨대 성범죄는 직업을 불문하고, 사회적 존경이나 신망과 무관하게,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앞서 언급된 '6대 전문직 종사자' 중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예술인'이라는 직업이다. 더구나 그들은 성범죄 혐의로 검거된 전문직 종사자 가운데 의사·종교인 다음으로 많다. 물론 예술인이 전문직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은 '예술인'이 과연 '의사'나 '종교인', '교수'나 '언론인', 혹은 '변호사' 등과 마찬가지로 유사한 하나의 직업군으로 묶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가령 예술인이 '의사'나 '변호사'만큼 경제적으로 윤택한가? 예술인이 '종교인'이나 '교수'만큼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는가? 예술인이 '언론인'만큼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그런데도 이번 '미투'의 불길이 제일 먼저 옮겨붙은 쪽은 아무래도 문화예술계로 보인다. 최영미 시인이 '괴물'이란 시에서 'En선생이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고,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른다'고 폭로하자, 당사자로 지목된 고은 시인은 자택 내 정원에서 모자와 선글라스·마스크를 쓰고, "30년 전에 술 먹고 손목도 잡고 했던 것 같다"며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잠시 수면 아래에 가라앉았다 싶던 「은교」의 박범신 작가가 다시금 호명되었고, 바야흐로 불길은 문학계를 넘어 미술계·영화계·음악계 등으로 촘촘하게,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옮아붙었다.
나는 성희롱이든 성추행이든 성폭력이든 간에, 그것이 법조계든 문화계든 종교계든 간에, 또한 그것이 영화계든 미술계든 음악계든 간에,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그 제도적 장치로써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애당초 궁금증은 여전히 남는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왜 문화계가 제일 먼저 뺨을 맞아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민감한 문제에 제일 먼저 책임을 져야 할 만큼 예술인의 사회적 책임이 무겁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예술인은 사회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일까?
2011년, 유망한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고은 씨가 굶주림에 시달리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적이 있고, 2015년에는 촉망 받던 연극배우 김운하 씨가 생활고에 병마가 겹쳐 결국 40세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부산에서는 민간 교향악단의 트럼펫 연주자였던 황성렬 씨가 생계 문제로 아파트에서 투신, 41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2016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예술인 맞춤형 사회복지사업 개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겸업 예술인 71.4%가 예술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월평균 47만 4000원에 불과했다. 2015년 1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61만 7238원인 점을 감안할 때 절대 다수가 창작 활동만으로 극빈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더욱이 우리 사회가 예술인의 고유한 창작 활동과 그 전문성을 과연 얼마나 인정해 주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예술인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일과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 풍토의 조성이 함께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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