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22>
『인저리타임』 2018. 3. 2
Wanted를 부른 둘리스의 앨범 표지
당신은 내가 멀리해야 할 남자죠
하지만 괜찮아요
당신은 알아요 당신은 부정하지 않는다는 걸
내가 치러야 할 대가란 것에
하지만 괜찮아요
이유는 당신의 입술은 꿀처럼 달콤할지라도
당신의 마음은 단단한 돌로 된 것 같아요
한 번 보고 당신은 내게서 도망쳤어요
당신이 홀로 고독해지면 날 보러 오리라 믿어요
영국의 가족보컬 둘리스(The Dooleys)의 「원티드」(Wanted). 1979년에 발표된 팝송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1980년대, 한국에서 공연을 가진 적도 있다. 강렬한 비트에 탄력적인 목소리. "여니 까니 까나니 까니 키퍼웨이~"는 여전히 내마음 속에서 살아 꿈틀댄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대학입시를 치른 날, 밤이었다. 교문 밖에서 시험 끝나기를 기다리던 큰형과 작은형은 나를 냉큼 낚아채서 시내 번화가로 이끌었다. 당시 큰형은 대학 3학년, 작은형은 겨우 대학 1년생이었다. 시험을 잘 치렀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시험을 쳤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나는 형들로부터 과분한 영접을 받았다.
형들이 나를 이끈 곳은 서면 천우장 근처였다. 천우장은 갈비와 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었는데, 당시 '천우장'이라 하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명성이 드높았다. 더욱이 '천우장 앞'은 남포동 '미화당 백화점 앞'과 쌍벽을 이루었고, 친구나 연인의 약속 장소 1~2위를 다투던 곳이기도 했다.
1983년 겨울, 서면은 가위 젊음의 물결이 넘실거렸고, 향락의 꽃은 이미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 휘황찬란한 네온싸인, 출렁이는 거리의 인파…. 아, 여기가 바로 천국이로구나. 말로만 듣던 나이트클럽, 즐비한 클럽마다 왁자지껄한 음악소리가 벌써부터 밖으로 방출되고 있었다. 으레 클럽 앞에는 정장 유니폼을 입은 삐끼들이 앞다퉈 호객행위를 벌였다.
백악관, 바덴바덴, 하버드…. 어디로 갈까? 아무래도 백악관은 미국 대통령 집무실이라 절차가 까다로울 것 같았고, 하버드는 커트라인이 너무 높아 보였다. 가장 문턱이 낮은 곳은 역시 바덴바덴이다. 저녁을 해치운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바덴바덴으로 입성했다.
드넓은 공간에는 수많은 테이블이 셋팅되어 있었다. 테이블마다 둘러앉은 무리, 무리들. 청바지를 껴 입은 청춘들이 내뿜는 자욱한 담배연기, 연신 피어오르는 비어잔의 거품들. 말소리와 웃음소리에 버무려진 음악소리. 진두지휘하는 교장(DJ), 그 아래에서 몇 다발의 춤추는 무리가 보였다.
작은형이 말했다. 대학생이 되면 춤도 추고, 술도 마실 줄 알아야 된다 안카나! 그러면서 능숙한 솜씨로 웨이터를 불러 맥주를 주문했다. 아, 나이트클럽에 입문함으로써 이제 나도 대학생이 되는구나.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말이지? 나는 큰형과 작은형이 잇따라 따라주는 맥주를 숨돌릴 틈도 없이 마셔댔다. 비온뒤에 땅이 굳듯이 형제들의 결속력은 맥주잔이 오가는 만큼 굳건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무대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여니 까니 까나니 까니 키퍼웨이~"에 맞춰 온몸을 불살랐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 어른이 되기 전에 벌써 화류춘몽(花柳春夢)의 달콤함을 알게 되었다.
원티드
김창욱 음악평론가·부산시의회 정책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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