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국책사업으로 '치매국가책임제'(2017. 9. 18)를 시행하고 있으며, 최근 개정된 '치매관리법'은 물론, 도처에 '치매안심센터'(전국 256개)를 잇따라 개설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치매 인구현황(보건복지부)을 살펴보면, 2016년 68만 5,000명에서 2017년 72만 5,000명에 이르렀고, 2024년 100만 명, 2050년에는 271만 명으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60세 이상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병이 바로 치매(35.7%)인 것으로 나타나 치매예방이 오늘날 한국 사회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의 하나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치매의 경우 가정에서 지출해야 할 비용만 해도 환자 1인당 매년 2,033만 원이 소요되며, 의료비와 요양비, 생산성 손실 등 간접비를 포함한 사회적 비용은 2015년 GDP(국내총생산)의 0.9%(13조 2000억 원), 2050년에는 GDP의 3.8%(106조 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2018. 12. 16 들풀처럼
늘 고개를 수그린 채 그 어떤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치매 노인이 있다. 그 분의 귀에 젊은 시절 그 분이 좋아했던 음악이 흐르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수그려졌던 그의 고개가 들리고, 게슴츠레하던 눈이 둥그레지고, 초점 없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노인은 음악을 따라 부르고, 휠체어로 고정된 그의 몸조차 리듬을 타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면의 아픔을 치유하는 놀라운 음악의 힘을 보여준다. EBS 국제 다큐영화제 개막작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Alive inside: A Stiry of Music & Memory)에 대한 이야기다. 2014년 미국 마이클 로사토 베넷이 만들었다.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는 사회복지사 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만나고 다니는 댄은 감독에게 단 하루만 자신에게 시간을 줄 것을 요청한다. 감독은 그를 따라가 요양원으로 카메라의 시선을 옮기고, 그 단 하루의 요청은 결국 3년 여의 시간을 투여해서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로 완성된다. 말 그대로 기적이다.
하루 종일 그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는 치매 노인, 침대에 묶인 채 식물인간처럼 천장만 바라보던 노인,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채 폭력적 반응을 보이던 노인, 그리고 알츠하이머를 앓으면서 삶을 상실해가던 노인들에게, 그들이 젊은 시절 즐겨들었던 혹은 좋아하던 음악을 들려준다. 그러자 기적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던 노인들의 눈빛이 밝아지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심지어 리듬을 타며 즐거워한다. 심지어 회색으로 말라비틀어져 가던 노인들의 기억 속에서 파릇하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
그러나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는 사실 기적의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미국 사회가, 아니 산업사회 이후 문명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노년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았다. 노인 빈곤율 세계 수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노년을 경제적 고통 없이 평온하게 요양원에서 보낼 수 있는 미국 노인들의 삶은 어쩌면 그 자체로도 환타지 같은 이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적인 고통이 해소되었다고 그 나라 노년의 삶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는 요양원 체제로 구축된 미국의 노년을 들여다본다. 산업사회 이후, 다수의 노인들이 부랑자와 함께 구빈원 등에서 노년의 삶을 마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오늘날 미국의 요양원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며, 결국 오늘날 미국의 요양원 체제는 당시의 구빈원과 현재의 병원이 결합된 '삶'이 아니라 마치 교도소와 같은 감금과 통제, 투약의 시스템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에 등장한 다수의 노인들은, 하루아침에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상실한 채 요양원에 수용되어 죽을 날까지 주는 약만 받아먹으며 사는 삶에 대해 좌절하고 분노한다. 그 반응은 때로는 끊임없이 자유를 찾아 탈출구를 찾거나, 분노 조절이 안되는 상태가 되거나, 그도 아니면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자포자기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을 '달래기 위해' 다국적 제약 회사를 등에 업은 요양원 체제는 '우울증' 등의 향정신성 약물을 남용하게 한다.
여기서 사회복지사 댄이 들고 나온 음악은 그저 음악이 아니다. 그들이 젊은 시절 즐겨 들었던 음악이어야 한다. 그 음악을 통해 노인들은 자신들이 버리고 온, 아니 자신들에게 버리도록 강요된 삶의 활기를 되찾는다. 그래서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는 기적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노년의 문제, 시스템화된 복지의 잔혹사, 복지의 이름을 빌린 인간 잔혹사의 고발이다. 그저 요양원에 처박아 둔 채 죽음을 기다리는 노년을 당신도 원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댄은 주장한다. 현재 미국 노인복지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향정신성 약물' 비용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노인들을 치매의 고통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그의 주장은, 일찍이 요양원의 노인들에게 아이들과 동물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노년의 행복을 되찾게 해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저 작은 외침에 그치고 말았던 또 다른 복지사의 주장처럼 쉽게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편익을 위한 혹은 이권을 통한 시스템은 강고하고 그의 소리는 힘이 없다.
댄의 좌절 이후, 작은 희망의 움직임들이 시작된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성금으로, 몇몇 요양원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들이 전달된다. 시스템의 변화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작은 희망이 균열 사이에서 꽃을 피워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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