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한형석 선생 음악극 '아리랑' 리뷰

浩溪 金昌旭 2011. 1. 28. 11:08
부산일보 2010.12.30

문화

 

 

 

[리뷰] 초연과 재연, 그 도리 없는 간극
한형석 선생 오페라 '아리랑' 70년 만에 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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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초연과 재연, 그 도리 없는 간극
먼구름 한형석 선생의 항일 오페라 '아리랑'이 7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29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아리랑' 공연에 태극기가 나부끼고 아리랑이 울렸다. 김경현 기자 view@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역사적인 무대 였다. 1940년 중국 시안(西安)에서 초연된 한형석 선생의 항전 오페라 '아리랑'이 70년 만에 29일 오후 7시 30분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부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1천7백여 관객이 거의 빈틈없이 자리를 메웠으며, 진지한 눈길도 빛났다.

'아리랑'의 중국 초연 무대에는 한국 이민자와 광복군 50여 명이 배우로 나섰다. 여기에 30여 명의 악단과 4개의 합창단이 총동원되었다. 10일간의 공연은 한·중 병사들의 독립의지를 드높였고, 공연을 통한 수익금 4천12원은 광복군의 군복 제작비로 쓰였다.

공연에 대한 현지 언론의 반향도 뜨거웠다.

젠민(建民)은 '탄탄한 구성, 특히 음악과 배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근래 보기 드문 수작'임을 강조했고, 쑹장(松江)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시안 음악계 최초의 대규모 연합공연'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아리랑'의 본 바탕이 되는 대본과 음악이 온전히 남아 있지 않다.

온전한 것은 일부 친필악보와 중국어로 된 제작노트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은 초연작의 원형을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재연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작품 전반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재구성이 절실히 필요함을 뜻한다. 이에 악보의 편작(編作)은 물론, 제작노트의 번역스토리텔링 등의 제반 기초작업은 이제 불가결한 일로 등장했다.

전 4막의 재연 '아리랑'에서는 행진곡 풍의 활달한 서곡에 이어, 원작의 한국민요('봄이 왔네', '아리랑')가 그대로 불려지기도 하고, 작곡자가 쓴 광복군가('압록강행진곡', '여명의 노래', '국기가')가 차용, 또는 변용되기도 했다. 원작과 무관한 노래('가을밤')나 편곡자가 새로 만든 노래('내 사랑 한반도', '잘 가요 그대', '달빛연가')도 때때로 부가되었는데, 이들의 음악적 얼개와 흐름은 자연스러웠다.

두 파트의 얼후(二胡)와 네 파트의 하모니카로 구성되었던 원작의 반주악단은 2관 편성의 오케스트라로 재편되었고, 여기에 꽹과리, 장구, 태평소와 같은 전통악기의 적절한 사용도 효과적이었다.

주역가수들(김성은, 박대용)이 보여준 빛나는 연주력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나친 기대 때문이었을까?

긴장도가 떨어지는 극의 진행과정, 논리적 고리가 약한 장면전환, 등장인물의 불투명한 캐릭터, 대사나 레치타티보의 부재에 따른 무미건조함 등은 공연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1940년 시안과 2010년 부산 사이의 시·공간적 거리, 절박한 전쟁 시기와 일상적 평화 시기 사이의 환경적 거리, 과거 수용자와 현재 수용자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엄연하다.

그리고 이번 공연이 이들 거리감을 능히 극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부산 예술가의 작품이, 부산 예술가들에 의해, 70년 만에 비로소 부산의 무대에 올려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역사적 의미는 가볍지 않다.

 

 

김창욱/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