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허밍코러스

浩溪 金昌旭 2012. 3. 10. 13:08

 

 

19세기 말 이국주의(異國主義, exoticism)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유럽 이외의 나라에 대한 동경의 발로였다. 누구보다 푸치니(G. Puccini 1858-1924)가 그 중심을 차지한다. 대표작 '토스카', '라보엠' 이외에 그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투란도트'와 일본을 소재로 한 '나비부인'을 남겼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나비부인'은 일본의 게이샤(藝者, 기생) 초초와 미국 해군장교 핑커톤의 러브 스토리를 뼈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구인들의 드높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동양에 대한 서구인이 왜곡과 편견, 곧 제국주의 유럽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적극 반영된 오페라이기도 하다. 김창욱, '청중의 발견'(부산: 해피북미디어, 2011), 13쪽.

 

핑커톤을 기다리는 초초.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허밍코러스

 

겨울 과수밭에서

고요히 흐르는 해류가 있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

빈 나무가지는 해초같이 떠서 흐른다.

 

이제 비로소 모든 것을 버림으로해서 얻은 자유

가만히 귀 기울이면

가라앉은 바다의 허밍 코러스.

 

눈물 겨운 가을햇빛 속에서 지탱해 오던 풍만한 보람의 과일은

이 수심 모를 공허를 위한 예비.

밤으론 쓸쓸한 혼들이 모여

산호수 사이 인어들이 해류에

머리를 헹구듯,

이 고요하고 슬플 것 하나 없는

허무에 머리를 감는다.

 

아직도 기다림이 남은 이여

봄 여름의 푸르던 이파리의 여음도 다 지워지고

일렁이는 바다의 울음도 다 삭아서

맑은 허공만이 남아 있는

이 태고같은 수심에

너의 마음을 누이렴.

 

- 김기종, '겨울 과수밭에서'(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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