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베르디, 그 다음은 누구인가?
한국예술문화비평가협회, '예술문화비평' 2013 여름호(통권 제9호)
해마다 음악가의 서거, 혹은 탄생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2010-2012년에는 말러 탄생 150주년 및 서거 100주년, 2012년에는 드뷔시 탄생 150주년 기념음악회가 각각 열렸다.
유명 음악가의 서거·탄생 기념음악회 잇따라
말러 기념음악회에는 서울시향·대전시향·광주시향 뿐만 아니라, 부산시향과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도 그의 교향곡을 앞다투어 무대에 올렸다.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던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세기 전환기의 대표적인 음악가였다. 그는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통해 고전과 낭만시대 교향곡의 전통을 극대화했고, 동시에 교향곡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념할 만한 작곡가다.
또한 드뷔시 기념음악회에는 서울시향․대구시향을 비롯해서 피아니스트 조재혁·윤철희 등이 그의 오케스트라 및 피아노 독주곡으로 무대를 장식했다. 끌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는 일찍이 전통적 화성어법에서 벗어나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음악세계를 선보였다. 애매모호한 조성, 유동적이고 반복되는 선율, 다양한 음악적 색채감 등이 그것이다. 그 역시 ‘인상주의’(impressionism)라는 새로운 음악경향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마땅히 기념할 만하다.
기념음악회는 올해도 계속된다. 올해는 낭만시대 오페라의 거장 바그너와 베르디가 탄생 200주년을 맞는 해다. 바그너 기념음악회는 울산시향·서울시향·대구시향·KBS향이, 베르디 기념음악회는 서울시오페라단·그랜드오페라단·국립오페라단·솔오페라단이 이미 열었거나 열 예정이다.
독일의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는 음악과 연극의 예술적 요소를 동등한 관점에서 융화시킨 신화적 음악극(Musikdrama)을 창출해 냈고, 동갑나기인 이탈리아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는 인간의 성격과 상황묘사와 같은 현실세계를 바탕한 대규모 오페라를 썼다. 이들은 19세기 서구 오페라계의 두 축으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곡가다. 그런 점에서 이들을 기념하는 음악회에는 한국의 민간악단은 물론 시립악단과 국립악단도 참여하고 있으며, 아울러 TV나 라디오 방송도 한 몫 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이들 유명 음악가와는 달리, 한국의 서양음악가들을 기념하는 데는 오히려 지나치게 인색한 것이 아닌지. 예컨대 올해는 바그너와 베르디 탄생 200주년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서양음악 1세대 작곡가인 김동진(金東振 1913-2009)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한국 음악가의 탄생은 기념하지 않아도 되나?
평남 안주출신의 김동진은 숭실중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8살 때 가곡 「봄이 오면」(1931)을 작곡함으로써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후 숭실전문 2학년 때인 20살에 이은상의 「가고파」(전편, 1933)를 비롯해서, 「내마음」(김동명 시, 1940), 「수선화」(김동명 시, 1941), 「진달래꽃」(김소월 시, 1957), 「저 구름 흘러가는 곳」(김용호 시, 1960), 「가고파」(후편, 1973), 「목련화」(조영식 시, 1974) 등과 같이 이른바 ‘정다운’ 명작가곡들을 잇따라 쏟아냈다.
또한 그는 비록 서양식 음악어법을 창작의 기초로 삼았으나, 한국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의 결합을 쉼없이 모색했다. “어야지여 어야지여”로 시작되는 대동강 뱃사공들의 소리를 바탕한 「뱃노래」(1932), 달구질하는 소리를 나타낸 합창곡 「당달구」(1932), ‘양산도’ 주제의 바이올린 협주곡(1938), 숭실전문학교 시절에 시도했던 관현악곡 「제례악」(1943), 평양지역 상여소리에 바탕한 「만가」(1942)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작곡가의 한국적 음악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김동진의 새로운 한국음악에 대한 모색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평생을 바쳐 ‘신창악’(新唱樂) 운동을 전개했다. 신창악이란, 한국적 오페라(가극)의 창작을 말하는데, 그것은 “우리 판소리의 정신과 멋의 기법을 이어받아 현대에 적응시켜 올바르게 발전시키”려는 것이었다. 신창악의 창작을 위해서는 판소리와 국악연주 효과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었다. 그는 명창 정정렬과 김창룡의 레코드를 통해서 판소리 창법을 연구했다. 그러나 판소리의 음정이 서양의 평균율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음정표기가 어려우므로 판소리에 가까운 음계를 설정한 후 평균율 음정으로 옮기는 방법을 썼다.
또한 서양 발성법으로 창(唱)의 기교를 터득하고 새로운 멋을 찾으려는 노력은 판소리가 아니면서 판소리에 가깝게, 서양의 과학적인 발성과 공명법, 한국말의 발음을 똑똑히 할 수 있는 새로운 발성법과 발음법을 개척하기도 했다. 그의 오페라 '심청전'(1978)과 '춘향전'(1993)은 무려 40년의 연구 끝에 맺은 신창악의 결실이었고, 그의 오페라는 단순히 판소리 채보의 현대화가 아니라 새로운 극적 구성을 바탕에 두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그가 쓴 「육군가」(1951), 「조국찬가」(1955), 「충무공의 노래」(1966) 등은 한국 근대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노래가 아니던가?
돌이켜 보면, 한국 근·현대를 관통하는 서양음악가들이 많이 존재한다. 홍난파·채동선·김순남·김희조·이상근·윤이상 등이 그러하다. 그들은 한국인의 삶과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했던 음악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음악가의 탄생, 혹은 서거 기념음악회 소식을 듣기란 실로 어렵다. 올해 바그너와 베르디를 기념하고, 내년에 우리는 또 누구를 기념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