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토건사업이 아니다
『부산일보』 2013. 07. 25 (22)
"무식한 위정자들은 문화도 수력발전소의 댐처럼 건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최고의 문화정책은, 내버려 두는 것이다. 제멋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러면 된다. 그런데 그러지를 않는다. 간섭을 하고 위협을 하고 탄압을 한다. 그리고 간섭을 하고 위협을 하고 탄압을 하는 것을 문화의 건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960년대 김수영이 쓴 것이다. 벌써 반세기 전에 씌어진 것임에도, 아직도 그의 발언이 유효해 보이는 것은 그가 살았던 때나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에 따라 문화에 대한 인식도 변하기 마련이지만, 관(官)의 '무식한' 행정은 여전하다.
'랜드마크 신화'에 포박된 문화
일찍이 부산시는 '크고 강한 부산'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무엇이 크고 강한 것인지, 크고 강하기만 하면 시민들이 행복할 수 있는지 하는 물음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쨌든 부산시는 '큰'것들을 가능한 한 많이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해운대 센텀시티, 명지 국제신도시, 정관 신도시, 에코델타시티와 같은 대형·초대형 신도시 프로젝트가 그러하며, 영화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등 이른바 '부산의 랜드마크'가 그러하다. 모두 권력과 자본이 결탁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들이다. 특히 수천억 원대의 막대한 건립비가 투입되는 문화시설은 거대하고 화려한 위용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운영콘텐츠나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애당초 영화의전당이나 오페라하우스를 왜 지어야 하고, 여기에 무엇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깊은 성찰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문화도 일종의 토건사업으로 생각하는 관료들의 60년대적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부산시의 '무식한' 문화행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짓고 보자'는 생각은 '뽑고 보자'는 생각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부산문화회관은 부산 공연문화의 메카이자 부산문화의 상징적인 장소다. 이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7개 예술단체에 500명에 이르는 시립 예술단원이 상주하고 있다. 1988년 개관 이래 줄곧 행정관료가 관장직을 맡아 왔으나, 올해 처음으로 개방형 직위로 바뀌었다. 그것은 최초의 민간인 관장이라는 점에서 부산 문화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뚜껑이 열리자마자,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임 관장은 부산오페라하우스 건립과 관련, 부산시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을 뿐 아니라, 부산과 직접적인 연고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것은 곧 부산문화회관의 독립적·자율적 운영은 물론, 시민·문화계와의 소통 가능성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되었다. 더구나 그가 예술의전당 사무처장 재직 시 문화부 종합감사에서 조직 운영 등 총체적인 부실이 지적된 전력도 큰 문제로 드러났다.
엊그제 부산시의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 내정도 마찬가지다. 단지 부산 출신이라는 사실 이외에, 부산에 대한 문화적 기여도가 전혀 없는 인사의 선임은 부산을 일궈 가는 지역문화인들을 절망에 빠뜨리고, 마침내 지역문화 생태계마저 황폐화시킨다. 그런 점에서, 부산시는 "중앙에서 용도폐기된 사람들이 별 인연도 없는 지역에 내려와 한 자리 차지하려는 데 일조해서는 안 된다"는 지역문화인들의 목소리에 겸허히 귀 기울여야 할 때다.
향후 부산 문화계의 수장에 대한 인사가 잇따를 예정이다. 부산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 부산문화재단 이사장, 부산박물관장 등이 그러하다. 차제에, 부산시는 지금까지의 관료주의적 밀실인사, 비공개 인사, 연고인사, 정실인사, 보은인사, 코드인사의 달콤한 유혹으로부터 하루빨리 해방되어야 한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인사시스템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삽질 돈질 갑질'에서 벗어나야
부산시는 시민들의 혈세로 운영되는 곳이다. 다시 말해 부산시 관료들은 부산시민들의 세금으로 먹고산다는 것이다. 마땅히 시민들의 공복으로서 대시민 서비스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같은 이치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보여 준 부산시의 행태는 누군가의 말처럼 '삽질 돈질 갑질'에 여념이 없다.
때때로 나는 누가 상전이고 누가 머슴인지,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착각할 때가 있다. 내년 6월이 오면, 내가 그런 착각을 한 지도 꼭 10년째다. 그 사이, 대한민국 해양수도 부산은 무려 44만 인구가 줄어들었고, 대한민국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도시로 전락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이 앞다투어 고향을 떠나 버린 부산은 전국 7대 도시 가운데 고령화 지수가 가장 높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모란이 피면, 부산도 다시 꽃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