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우리 시대의 금지곡

浩溪 金昌旭 2014. 3. 26. 18:01

 

한국예술문화비평가협회, 예술문화비평』 2014년 봄호(통권 제12호)

 

 

우리 시대의 금지곡

 

창 욱

음악학박사

부산음악평론가협회장

 

 

시절이 참 하수상하다. 지금껏 우리가 즐겨 불렀던 노래들이 잇따라 정부기관에 의해 계획·조작·통제되고 있는 까닭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매년 5·18 민주화운동 추모행사를 대표하는 노래로 제창되어 왔다. 1997년부터는 5·18 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승격되었고, 정부가 주관한 첫 기념식 때부터 본 행사의 기념곡으로 제창되었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 시기였던 2009년부터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식전 행사로 밀렸고, 2011년부터는 제창이 폐지되는 대신 기념공연시 합창에 삽입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2013년 국가보훈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별도의 5·18 민주화운동 공식 기념곡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기관의 ‘창조적’인 노래 통제

 

「님을 위한 행진곡」(원작 백기완)은 1981년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 전남대 학생이었던 음악가 김종률 등 광주지역 노래패 15명이 공동으로 만든 노래극 「넋풀이: 빛의 결혼식」에 삽입된 노래다. 이 노래극은 1980년 5월 27일 5·18 민주화운동 중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에 의해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것이었다. 이후 이 노래는 카세트 테이프, 악보 필사본 및 구전으로 널리 소통되었고,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노래로 자리잡았다.

 

더구나 이 노래는 2002년 월드컵 응원가로 널리 불렸고, 해외에도 폭넓게 소개되어 홍콩·중국·캄보디아·태국·말레이시아 등지의 노동운동 현장에서도 현지어로 번안되어 불리고 있다.

 

정부기관의 노래 통제는 비단 국가보훈처의 전유물은 아니다. 이에 뒤질새라 국방부도 화끈하게 나섰다.

 

지난해 말 국방부는 전통민요 「아리랑」·「노들강변」·「밀양아리랑」·「까투리타령」 등의 민요를 비롯해서 50여 곡을 불온곡으로 지정하고, 노래방 기기에서 삭제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가령 노래방 반주기에 ‘아리랑’을 입력하면 “국방부 요청으로 삭제된 곡”이라는 문구가 뜨고, 삭제된 특정 노래를 선곡하지 말라는 문구도 붙여놓았다고 한다.

 

그 밖에도 국방부의 이른바 ‘불온곡 리스트’에는 「우리의 소원」과 「그날이 오면」은 물론, 「그리운 금강산」·「삼팔선의 봄」·「우리는 하나」·「통일로 가는 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평화나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다.

 

그런데 「아리랑」이 어떤 노래던가? ‘민족 정서의 수렴체(收斂體), 내외적 모순에 대한 저항의 발현체(發顯體), 좌우 극단에 대한 차단체(遮斷體), 고난 극복의지의 추동체(推動體)’(김연갑)로 기능해 온 한민족의 상징적인 노래가 아니던가? 더구나 아리랑은 대중가요·소설·현대시·영화·연극·가극·만담·춤으로까지 뿌리 내린 한민족 고유의 문화가 아니었던가. 마침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노래가 아니던가!

 

노래 통제가 어디 그 뿐일까? 문화체육관광부도 떡 하니 숟가락을 얹었다. 최근 문화부는 「아빠, 힘 내세요」라는 노래와 이 노래 뮤직비디오에 대해서 양성평등 의식을 해치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라는 영·유아 아동용 문화콘텐츠 모니터링을 발표했다. 더구나 양성평등의 저해 정도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분류되었다.

 

「아빠, 힘 내세요」 뮤직비디오에는 아빠가 들어오기 전에 집안상황을 보여주는 장면, 아이들은 집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엄마가 요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부분에서 엄마는 가사노동하는 사람, 아빠는 경제활동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키워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로 시작되는 「아빠, 힘 내세요」(한수성 작사·작곡)는 90년대 말 IMF로 침울했던 대한민국 아빠들의 기(氣)를 살렸고,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힘을 불어 넣어준 노래다. 2004년 광고음악으로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졌고, 유치원 재롱잔치에 빠질 수 없는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그것은 이미 대한민국 남녀노소의 애창곡이자 국민가요가 되었다.

 

 

노래 통제는 암울한 시대라는 증좌

 

이같은 국가기관의 노래 통제는 가히 ‘창조적’이다. 창조경제시대에 걸맞는 컨셉트다.

 

노래에 대한 통제는 주로 암울한 시기에 가해졌다. 일제강점기가 그랬고, 유신시대가 그랬다. 일제는 효율적인 식민지 통치를 위해 수많은 법령을 제정·시행했는데, 법률·칙령(勅令)·제령(制令)·부령(府令)만 해도 35년 간 1만 여개나 되었다. 그들은 법령을 통해 노래책·음악공연·레코드·학교교육을 통제함으로써 노래의 소통을 가로막았다. 치안·치안방해·풍속괴란을 이유로 항일·반일·프로레타리아 노래를 금지시켰다(문옥배,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

 

또한 1975년 5월 박정희 정부는 ‘유신헌법의 부정·반대·왜곡·비방·개정·폐기의 주장이나 청원·선동, 또는 이를 보도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위반자는 영장없이 체포한다’는 긴급조치 9호를 선포했다. 이후 정부는 대중예술의 퇴폐성도 국가안보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 6월에 ‘공연활동의 정화대책’을 발표했다. 그것은 모든 공연예술을 대상으로 심의를 강화하도록 하는 한편, 특히 대중가요 심의를 통해 금지곡을 선정, 음반까지 폐기케 하는 강력한 방침이었다.

 

이에 따라 국내 가요 222곡이 금지곡으로 선정, 방송국 등 각계에 통보 조치케 했다. 이장희의 「그건 너」와 신중현의 「미인」은 가사저속·퇴폐,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방송부적격,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곡조 왜색풍,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창법저속·불신감 조장 등의 이유로 각각 금지곡으로 묶였다.

 

지배체제의 노래에 대한 통제는 관리된 사회를 만들 뿐 아니라, 개인의 의식까지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 특히 국가기관의 검열·심의는 노래의 생산과 분배, 소비를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은 일제강점기도 아니고, 유신시대도 아니다. 이른바 문화융성을 부르짖는 21세기가 아닌가? 노래를 통제하며 창조를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