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음악
『월간 에세이』 2014년 4월호(통권 제324호)에 내가 쓴 수필이 실렸다. 방금 배달되어 뜨끈하다. 나이 오십줄은 인생 이모작을 생각해야 할 때. 이제 어디 에세이스트로 나서 볼꺼나? 2014. 3. 26 들풀처럼
한때 ‘웰빙’(Well-being)이 유행한 적이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는 일종의 철학적 화두였다. 그러나 현실사회에서는 기실 육체적 건강이 우선시되고, 건강을 위해서 무엇을 먹고 마셔야 하는가라는, 다분히 소비문화의 개념으로 왜곡·변질되었다.
웰빙시대가 끝날 무렵 새로운 트렌트가 생겨났다. 이른바 ‘힐링’(healing)이다. 그것은 웰빙과는 달리,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네 마음의 생채기를 치유(治癒)한다는 내면적·정신적인 쪽에 무게중심이 놓여졌다. 힐링은 문학과 예술, 특히 음악에서 도드라졌다. 여기저기서 치유음악회가 열렸고, 치유를 목적한 음악앨범도 잇따라 만들어졌다.
그러고 보면, 음악이 치유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꽤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고대 철인(哲人)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론(catharsis論)이 그렇다. 비극에 등장하는 합창(코러스)이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빼어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술을 빚을 때나 빵을 만들 때, 혹은 농작물을 키우는데도 음악이 적극 활용된다. 가령 그린음악(green music)은 농작물을 재배할 때 즐겨 쓰인다. 식물의 경우 아침 9시에서 11시 사이에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켠다. 이때 집중적으로 음악을 들려주면 생장속도가 현저히 빠를 뿐 아니라, 토마토와 같은 열매식물의 경우 맛과 당도가 매우 높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음악이 식물에 달라붙는 진딧물을 퇴치하는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메뚜기·무당벌레·개미와 더불어 작물에 큰 피해를 주는 것이 진딧물이다. 진딧물은 얼핏 잘 보이지도 않는 해충이지만 한 순간에 수천, 수만 마리를 양산할 정도로 번식력이 뛰어나다. 복숭아 진딧물을 배추잎에 키우며 부드러운 음악을 지속적으로 들려주었더니, 연두색의 그것이 모두 빨갛게 변하고 수명도 짧아졌다. 더구나 배추 포기당 평균 560마리의 진딧물이 음악을 들려주고 나서는 90% 가까이 줄어 포기당 65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식물에 유익한 음악이 사람이라해서 무익할 수는 없다. 음악은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근육의 긴장을 완화시켜 불면증에도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음악은 사람들의 지치고 다친 마음의 생채기를 너그럽게 다독거리고 어루만져 준다.
나는 음악의 힘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복지관에 특강을 나갔을 때다. 수강대상은 늙고 병들고 돈 없는 60대 이상의 독거노인이 대부분이었다. 강의 도중에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되는 「졸업식 노래」를 들려 드렸는데, 저쪽 구석 자리에서 누군가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따금 흘러내리는 눈물도 남몰래 찍어내고 있었다. 평소 강의 참여도가 높은 할머니였다. 왜 우시느냐고 여쭈었더니, 가난했지만 즐거웠던 어릴 적 친구들이 불현듯 생각나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해맑은 시골소녀가 도회지의 외톨이 할머니가 될 때까지의 세월을 떠올렸다.
‘임시수도 1000일, 부산의 노래’라는 특강을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국전쟁기 때 많이 불려졌던 노래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와 같은 흘러간 옛노래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강의가 끝나자, 할머니 한 분이 내게 살짝 다가와 오늘 들려준 노래를 아주 잘 들었고, 들려주어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오래 전에 자신을 애지중지했던 오빠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생전에 즐겨 불렀던 노래들을 오랜만에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추억이 서린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은 분명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얻었으리라.
음악은 힘이 세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음악이 없는 세상을 동경한다. 음악이 필요하다는 것, 치유의 음악이 절실하다는 것은 필경 치유해야 할 우리네 마음의 생채기가 그만큼 넓고 깊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치유해야 할 생채기가 없다면, 의당 치유의 음악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