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수석지휘자는?
2015. 4. 25 (7)
Q. 리신차오 사의 표명, 차기 부산시향 수석지휘자는?
"재계약 설득해 붙잡아야" vs "국내 지휘자 영입해야"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의 역할은 누구보다도 중요하다. 훌륭한 연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걸출한 상상력과 열정, 그리고 리더십을 갖춘 지휘자가 필요하다. 지휘자 능력이나 지명도에 따라 오케스트라에 대한 평판이 달라질 정도로 지휘자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부산시향 수석지휘자 리신차오는 올해 말 임기가 만료되면 사퇴하겠다는 뜻을 본지와의 인터뷰(지난 20일자 21면)에서 밝혔다. 그는 24일 오전에도 단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올해 말까지만 임기를 수행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1989년 마크 고렌스타인 이후
24년째 외국인 지휘자가 맡아
리신차오 지휘력 긍정적 평가
7년째 최장수 지휘봉 잡아
연말 임기 만료 거듭 사의
음악계 후임 선정 의견 분분
본보 인터뷰에서 "부산과 부산시향을 사랑한다"라며 "하지만 올해 말이면 부산시향에서 일을 한 지가 7년 가까이 돼 계속 있으면 부산시향을 위해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나의 계약 만료 전까지 훌륭한 지휘자를 찾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 기간까지 적임자가 없고, 그가 부산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면, 이를 재고할 수 있음을 내비쳐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부산시향 송년음악회 파동을 비롯해 최근까지만 해도 부산문화회관과의 마찰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러다가 마음을 정리한 듯 얼마 전 박성택 부산문화회관 관장에게 편지를 보내 "나와 박 관장 간에는 어떠한 갈등도 없으며 오직 음악에만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지난 18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교향악 축제'에서 활기찬 지휘로 "최근 부산시향 연주회 가운데 최고의 연주회"라는 호평을 들었다. 비장감이 들 정도로 교향악 축제에서 단원들과 하나가 되어 단원들을 잘 리드했고, 절묘한 연출력과 곡목 구성으로 많은 청중들로부터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당시 서울 연주회는 '부산시향과 리신차오가 왜 진작 이런 연주력을 보여 주지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표를 달 정도로 의미 있는 연주회였다.
리신차오 지휘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암보력과 음악 해석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며 음악 외적인 연출력도 걸출하다는 것이다. 또한 단원들과의 소통도 원만하다. 리신차오는 올해 임기를 마치면 부산시향을 거쳐 간 역대 외국인 지휘자 가운데 최장수 지휘자가 된다.
그가 이렇게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단원들이 그를 잘 따랐던 덕분이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지난해 송년음악회 파동을 제외하고는 잡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리신차오가 단원들 개개인 평가에서 너무 후한 평가를 내려 잡음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휘자로서 단원들을 자극하며 연주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지 못해 시향의 체질이 다소 느슨해졌다는 평가다.
또한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부산시향이 지역과 지역민과의 소통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있다. 부산에 머무르는 기간 역시 짧아 부산시향 연주회와 연습량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부산시향 첫 외국인지휘자로 지휘봉을 잡아 부산시향의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마크 고렌스타인(1989.11~1992.1)과 리신차오를 곧잘 비교하곤 한다.
고렌스타인은 평소 연습을 매우 중시하고 연습 때마다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강한 카리스마를 지녔다. 당시 시향 단원들은 고렌스타인의 혹독한 스파르타 식 훈련에 혼쭐이 났다. 하지만 모두가 하고자 하는 의욕에 넘쳐 시향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좋았다.
여기에 반해 리신차오는 단원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화합하려고 노력하는 온화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휘자로 대비된다.
외국인 지휘자 영입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국내에 외국인 지휘자가 본격적으로 들어 온 시기는 1990년대 우리나라가 동구권과 러시아와의 교역을 확대하면서부터다. 동구권 지휘자들은 연봉이 높고 처우가 좋은 국내 교향악단들을 선호했다.
외국인 지휘자는 '낙하산 인사'에 대한 구설수가 적어 선임 과정에서 많이 채택된다. 외국인 지휘자는 국내 인맥에 휘둘리지 않고 공평하게 실력만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여기에 반해 우리나라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통역이 필요해 단원들의 전체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지휘자와 단원들 간의 적당한 관계 속에서 안주하게 되면 오케스트라 연주력을 향상시키기 어려운 구조 또한 지니고 있다. 부산시향은 지난 1989년 말 마크 고렌스타인 이후 24년 넘게 줄곧 외국인 지휘자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1996~2003년 부산시향을 지휘한 곽승 지휘자가 있지만 그는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 처우도 외국인으로 해주었다.
리신차오가 일단 사퇴 의사를 밝힌 만큼, 차기 지휘자는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 지 부산음악계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리신차오가 7년 동안 부산시향을 잘 이끌어 오고 시민들로부터 인기가 있어 그를 설득해서 재계약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 한편에서는 "부산시향의 외국인 지휘자 시스템이 24년 동안 지속돼 오면서 얻은 것도 많지만 잃어버린 것도 많다"라며 "이번 기회에 이제는 국내 지휘자를 영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을 펼친다. 부산에 오래 머물면서 시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은 물론, 단원들을 체계적으로 훈련시킬 수 있는 유능한 국내지휘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리신차오 임기를 1년가량 연장해 차기 부산시향 수석지휘자를 영입하기 위한 준비 기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음악평론가 김창욱 씨는 "내년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시향 객원지휘를 차례로 시킨 후, 시민들로부터도 평가 받는 무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부산시 역시 장기적 차원에서 리신차오 이후에 시향 지휘자를 누가 맡을 것인지에 대해 이제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박성택 부산문화회관 관장은 "부산시향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연주단체를 지향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국내 유수의 교향악단을 지향할 것인지에 대해 부산시가 우선 결정을 내리고 그에 맞춰 후임 지휘자 인선 과정을 적절하게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휘자의 역량과 열정에 따라 오케스트라는 바뀔 수 있다. 아니 바뀐다. 유능한 지휘자 영입을 위해 부산시가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게 부산음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박태성 선임기자 pt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