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치다

죽음을 생각한다

浩溪 金昌旭 2015. 8. 29. 05:52

 

『부산일보』 2015. 8. 29 (19)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섰다. 바야흐로 조락의 계절이 온 것이다. 인생으로 치면, 나머지 절반에 해당한다. 머잖아 가지마다 앞다퉈 낙엽을 떨어뜨릴 것이고, 바닥에는 떨어진 주검들이 차곡차곡 쌓여 갈 것이다. 떨어지지 않으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파리들, 그러다 결국 땅바닥에 나뒹구는 낙엽들. 그것은 나를 슬프게 하고, 새삼 죽음마저 떠올리게 한다.

 

한데, 과연 죽음이란 무엇일까. 숨이 멎는 것? 세상을 하직하는 것? 질긴 이승의 인연을 끊고 마침내 저승의 강을 건너는 것? 죽음의 세계를 아는 이는 없다. 인류의 스승인 공자께서도 "삶을 다 모르는데 죽음을 어떻게 아느냐"고 일갈하지 않았던가! 만약 인간이 죽음의 비의를 알게 된다면, 오늘날 세상의 수많은 종교는 모조리 사라질지도 모른다.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조락의 계절' 가을이 성큼

낙엽 보며 '죽음 무엇인가' 떠올려

지옥 두려워하지 않는 세태 걱정

 

죽고 나서 가는 곳은 대개 두 쪽으로 나뉜다. 한 곳은 천국이고, 다른 한 곳은 지옥이다. 불가에서는 천국을 극락이라고 한다. 지극한 즐거움이 머무는 곳이란 의미겠다. 천국은 좋은 곳,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이다. 반면에 지옥은 싫은 곳, 누구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천국은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천상의 공간이다. 지옥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어둠 속의 지하세계다. 요컨대 살아생전에 태산 같은 복을 지으면 천국에 가고, 극악무도한 죄악을 저지르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떤 곳일까? 그곳은 빛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빛은 눈부시게 맑고 밝다. 울긋불긋 꽃들이 만발하고, 그들이 뿜어내는 향기는 천지를 진동케 한다. 그곳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시냇가에는 맑은 물이 철철 넘쳐흐른다. 우거진 숲 속의 과일나무에는 탐스럽고 달콤한 열매가 풍성하다.

 

이에 반해 지옥은 어둡고 음습하다. 누구도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다. 도산(刀山) 지옥에는 살생을 일삼은 자들이 끌려 들어온다. 이들은 날카로운 칼날이 뾰족뾰족 튀어나온 평상 위에 알몸으로 눕혀져 옥졸들이 찌르는 칼에 온몸을 내맡겨야 한다. 거짓말이나 이간질한 자들은 발설(拔舌) 지옥으로 끌려간다. 옥졸들이 죄인의 입을 벌려 집게로 혀를 빼낸다. 화산(火山) 지옥은 또 어떤가. 뇌물을 받거나 도적질한 자들이 불구덩이에서 태워져 죽임을 당한다. 사기꾼들을 기다리고 있는 곳은 화탕(火湯) 지옥이다. 죄인들은 쇳물이 펄펄 끓는 솥가마에 삶겨져 살과 뼈가 분리되는 고통을 겪는다.

 

천국의 풍경은 가히 환상적인 유토피아지만, 왠지 밋밋하고 상투적이다. 여기에 비하면, 지옥은 그 종류도 다양하려니와 그곳에서 행해지는 형벌의 묘사도 매우 구체적이다. 왜 그럴까? 누군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천국의 즐거움보다 오히려 지옥의 고통에 더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지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풍경이다. 중세 마녀사냥이나, 식민지 시기 일본 순사들의 끔찍한 고문, 군부독재 시기 행해진 국가권력의 폭압 따위가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까닭이다.

 

참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참이 되는 시대는 늘 있었다. 오늘날도 별반 다를 바 없다. 거짓말·이간질을 일삼는 자들이 떳떳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뇌물을 받고 도적질한 자들이 오히려 큰소리다. 사슴을 보고 말이라 우겨대는 사기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그들은 지옥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다. 애당초 천국과 지옥이 모두 허구임을 그들은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