浩溪 金昌旭 2017. 12. 10. 20:29


[아침향기] 

부산일보2017. 12. 11 (31)  


김창욱  악평론가·부산시의회 정책연구위원

 

경기도 화성은 송강호가 열연한 영화 「살인의 추억」의 무대이지만, 근대 작곡가 홍난파와 대중가수 조용필을 낳은 고장이기도 하다. 1969년 무명 가수로 출발한 조용필은 꼭 10년 만인 1979년 「창밖의 여자」로 데뷔, 마침내 '국민오빠'로 대중음악계의 정상을 차지했다. 이후 그는 싱어송라이터로 국내 최대 콘서트 청중 동원, 예술의전당 7년 연속 공연이라는 기록을 남기면서 마침내 '가왕'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는 「단발머리」·「촛불」·「고추잠자리」·「꿈」·「여행을 떠나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그 가운데 「꿈」(1991)은 그의 오랜 무명 시절에 대한 잿빛 비망록이라는 점에서 자못 의미가 크다. 특히 그가 오랫동안 청중을 사로잡은 것은 단지 목이나 입으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노래한 가수였기 때문이리라.
 
'서울의 꿈' 좇아서 서울로, 서울로
예나 지금이나 만만하지 않은 삶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 아니지만
'3포 세대' 청춘 마음 헤아릴 수 있길 

조용필이 직접 작사·작곡·노래한 「꿈」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변두리에 살던 한 젊은이가 성공의 부푼 꿈을 안고 대처로 나온다. 거대하고 웅장한 빌딩, 화려하고 찬란한 네온사인에 눈이 다 휘둥그레질 지경이다. 그러나 성공은커녕 문턱 높은 도시에 발붙이기조차 어렵다. 오히려 그곳은 부모 형제가 없는 "춥고도 험한 곳"이었고,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지만, 결국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촌향도(離村向都)가 본격화되었던 1970년대와 황석영의 「장사의 꿈」(1974)이 생각난다. 레슬링 선수가 꿈이었던 씨름판 장사 일봉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도회지로 나온다. 그러나 삶은 그다지 녹록지 않았다. 그는 목욕탕 '시다바리'로 전전하거나, 애자와 함께 에로물을 찍으며 그럭저럭 생계를 이어간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다리를 절며, 눈물을 흘리면서 도회지를 떠나간다. 지금껏 농업사회에서 인정받던 육체적 힘이 기계에 의한 공장제 산업사회로 재편되면서 이전의 노동력에 대한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노래를 들으면, 1980년대 젊은 청춘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서울드림'이 떠오른다. 이미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며, 처음 만나 사랑을 맺'(패티김, 서울찬가, 1966)었던 서울은 '종로에 사과나무, 을지로에 감나무를 심'(이용, 서울, 1982)을 만큼 낭만과 여유가 넘쳐흘렀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정수라, 아! 대한민국, 1983)는, 아주 '특별'한 유토피아가 되었다. 

서울의 꿈을 좇아 전국 각지의 청년들이 잇따라 서울로 진격했다. 기차간에서 구겨져 간밤을 보낸 그들은 부스스한 얼굴로 서울역에 내렸다. 새벽녘, 낯선 곳에 떨구어진 그들은 어디로 갈까. 마땅히 불러주는 곳도 없었다. 그들은 우선 가까운 포장마차에 들러 허기진 속을 우동이나 오뎅 국물로 데워야 했다. 외롭고 고단한 서울살이, 별도 달도 그들의 마음은 알 수 없었으리라. 괴로울 때 그들은 슬픈 노래를 불렀으리라. 슬퍼질 때 그들은 홀로 눈을 감고 고향의 향기를 들었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청운의 꿈을 이루었을까? 성공한 그들은, 마침내 금의환향했을까?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 이땅을 살아가는 수많은 젊은이들도 그와 다를 바 없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삶이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어떤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때 청춘들은 오히려 행복한 시대를 살았을지 모른다. 적어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1 대 99의 경제 양극화가 지배하는 오늘날, 이른바 3포 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자)가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혼밥'을 먹고, '혼술'을 마시는 청춘도 그만큼 늘어났다. 30년 전 청춘이었던 세대는 3포 세대 청춘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들의 외로움과 슬픔을 과연 알 수 있을까. 그런 가운데, 벌써부터 기업들은 앞다퉈 4차 혁명을 부르짖고 있다. 마치 전능한 선지자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