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전(必承前)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열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는 일으키기 어렵겠다.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역하여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쏘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3월 18일 김유정으로부터.
※ 1937년 3월 18일 필승(必承) 안회남(安懷南 1910-미상)에게 보낸 편지. 그는 이 편지를 쓰고 11일 후인 3월 29일 아침 6시 30분에 세상을 떠났다. 병명은 폐결핵. 향년 29세였다.
김유정(金裕貞 1908-1937)
소설가. 강원도 춘성 실레마을 출생.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 중외일보 신춘문예에 「노다지」가 당선. 1930년대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해학적이면서도 현실비판적인 농촌소설을 발표. 주요 작품으로 「동백꽃」, 「만무방」, 「봄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