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필승전(必承前)

浩溪 金昌旭 2018. 10. 8. 08:00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열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는 일으키기 어렵겠다.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역하여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쏘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 , 슬픈 일이다.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3월 18일 김유정으로부터.


※ 1937318일 필승(必承) 안회남(安懷南 1910-미상)에게 보낸 편지. 그는 이 편지를 쓰고 11일 후인 329일 아침 630분에 세상을 떠났다. 병명은 폐결핵. 향년 29세였다.

 

김유정(金裕貞 1908-1937)

                               

소설가. 강원도 춘성 실레마을 출생.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 중외일보 신춘문예노다지가 당선. 1930년대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해학적이면서도 현실비판적인 농촌소설을 발표. 주요 작품으로 동백꽃, 만무방, 봄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