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방에서의 6개월
지난해 가을, 나는 육임신문 동문방(六壬神門 東門坊) 9기로 입문했다. 손꼽아 헤어보니, 어언 6개월이 다 됐다. 이곳에서 나는 전혀 모르는 분들도 많이 알게 되었고, 더러는 이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적잖이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여지껏 공짜로 점심을 얻어 먹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동문방 덕분이다.
동문방에 입문하기 전에 나는 단월드 평생회원에 가입한 적이 있다. 350만원의 거금을 내고, 매일 새벽에 도장에 나갔다. 그러나 나의 굳은 결심은 얼마가지 않았다. 보름이나 채 될까? 새벽잠이 많은 나의 게으름 탓이었다. 더구나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여일(如一)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진경(眞鏡) 스승께서 육임(六壬)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게다가 친히 입문을 위한 추천까지 해 주셨다. 평소 존경해 마지 않는 스승의 말씀이기에 두 말 않고 따랐다. 지난 6개월 동안 스승께 누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은 했으나, 부득이 한 사정으로 몇 차례 빠지기는 했다.
여기서 나는 토납법(吐納法)과 승강공(昇降功), 나아가 여의신공(如意神功)을 배웠다. 코는 막되, 댓잎 하나 들락거릴 정도로 입을 벌리고, 오직 입으로만 숨을 쉬는 토납법은 쉽지 않았다. 아니, 어려웠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줄곧 여기에 집중했다. 승강공을 할 때도 호흡에 신경을 썼다. 특히 백회(百會)와 회음(會陰)을 하나같이 일치시키는 꼿꼿한 자세는 한동안 온몸 구석구석이 쑤시고 저려올 만큼 괴로운 것이었다.
여의신공은 공(功)의 이름이 실로 현묘(玄妙)했다.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걸 배우고 나면, 여의주를 문 신선이 될까? 그러나 매혹적인 이름에도 불구하고, 수련은 간단치 않았다. 똑같은 자세, 똑같은 호흡, 똑같은 동작의 승강공에 비해, 그것은 자세·호흡·동작에 있어서 자유자재의 셈여림을 요구했다. 자세에 신경을 두자니 호흡이 불안했고, 호흡에 신경을 두자니 자세에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호흡을 아주 놓아버리고, 의식을 상단전에 두라!"는 사범님의 말씀은 아주 먼 별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럭저럭 수련생활 반 년을 맞고 보니, 호흡과 승강에는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여의신공만큼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간혹 손에 기감(氣感)이 느껴지지도 하지만, 아직은 신통찮다. 그런데 지난 주 시험준비 때 우리 9기 가운데 최고수(最高手)인 호경 도반 옆에 앉아 수련을 했는데, 갑자기 왠지 모를 기운이 엄청나게 내게 몰려옴을 느꼈다. 아, 이것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기(氣)였던가!
진경 스승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수련 중에 여러 변화가 생긴다고 했다. 처음에는 얼굴이 변하고, 다음에는 목소리가 변하며, 그 다음에는 마음이 변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가운데 첫 단계로 얼굴이 변한 적이 있다. 1달이 지났을까, 문득 거울을 보는데 내가 봐도 내 얼굴이 너무나도 맑아 보이는 것이었다. 코 언저리에 오랫동안 맴돌던 붉은 기운이 어언 봄눈 녹듯 사라지고, 어느새 얼굴에는 온통 해맑은 빛이 감도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결코 나르시스(Νάρκισσος)의 도취가 아니었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콧등과 귀때기가 시리고, 손가락과 발가락 끝이 아리고 쓰릴 지경이었다. 어김없는 자연의 섭리랄까? 어느덧 추위도 한 풀 꺾였나 보다. 연일 맑고 부드러운 햇살이 살포시 어깨에 내려 앉는다. 마치 깃털만큼이나 가볍고 평화롭다.
언제나 멀찌감치서 따사로운 마음으로 지켜 주신 효곡(曉谷) 방주님, 항용 처음처럼 9기를 이끌어 주신 현주(玄洲) 사범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더불어 먼 길에서 만나 때로는 위안이, 때로는 채찍이 되어 준 우리 9기 도반들께도 새삼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