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야 우지 마라
음악풍경 김지은 회원(달빛·뮤지컬대본작가)이 최근 '홍도야 우지 마라'(2. 19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 대해 한 필 썼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희대의 뮤지컬 악극'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2022. 3. 24 들풀처럼
다가온 봄기운에 겨울이 위기를 느꼈는지 찬바람이 몹시 불었던 지난 2월 19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뮤지컬 악극 <홍도야 우지마라>가 공연되었다. 추운 날씨와 위험한 코로나 시기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은 사람들로 꽤 붐볐다. 하지만 다들 2년 이상 지속된 바이러스 교육 때문에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자리도 띄워 앉아 안전하게 방역수치를 지키며 관람했다.
<홍도야 우지마라>는 1936년 임선규가 쓴 4막 5장으로 구성된 희곡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연극은 초연된 후 큰 인기를 누렸고 주제가인 <홍도야 우지마라>는 당대를 휩쓸었다. 탄탄하게 구성된 스토리를 바탕으로 총감독 전영수, 연출 전성환, 극본 김세한, 음악 이영돈, 안무 김갑용, 연주 유코오케스트라(United Korean Orchestra), 그 외 많은 배우와 가수, 스텝들의 합심과 노력으로 뮤지컬 악극 <홍도야 우지마라>는 세련된 현대풍으로 재탄생되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셔서 고아가 된 홍철과 홍도 남매는 서로 의지하며 우애 깊게 자란다. 홍철은 열악한 환경에도 순사가 되고 싶은 꿈을 갖게 되고, 오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홍도는 기생이 된다. 어느 날 홍철이 홍도에게 친구 광호를 소개한 후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광호는 이미 집안에서 정해 놓은 약혼녀 혜숙이 있다. 기생과의 결혼을 용납할 수 없었던 광호 어머니는 광호가 구라파로 유학을 떠났을 때, 모함의 편지를 만들어 홍도를 쫓아내고 광호로부터 홍도를 떼어 놓는데 성공한다. 광호가 돌아 왔을 때 사랑이 식어버린 것을 깨달은 홍도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광호를 죽이고, 자신이 의지했던 오빠 홍철에 의해 체포된다.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이런 비극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 같다. 베르디의 대표적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내용도 고급 접대부인 비올레타와 부잣집 도련님 알프레도, 그리고 그 둘의 사랑을 반대하는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겪는 비극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보다는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이야기에 환호한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이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의 음악은 ‘희망가’, ‘홍도야 우지마라’, ‘낭랑18세’, ‘목포의 눈물’,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사의 찬미’ 등 귀에 익은 트로트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에는 큰 인기를 누린 곡들이지만 오늘 날 들으면 다소 단조롭고 지루할 수 있는 노래들이다. 이영돈 작곡가는 고민 끝에 과감한 편곡을 시도해 곡들을 탈바꿈했다. 선율만 놔두고 화성과 대위적인 요소를 끼워 넣어 풍성하게 표현했고, 오케스트라 악기뿐만 아니라 기타, 베이스 기타, 키보드를 넣어 더욱 더 현대적인 음색으로 만들었다. 덧붙여 마라카스, 비브라 슬랩 등을 포함한 다양한 타악기를 이용해 다채로운 리듬을 구사했다.
무대 연출은 영상이 주를 이뤘는데, 장소의 변화와 계절을 나타내는 영상미가 뛰어났다. 거기에 배우들이 화려하고 우아한 한복을 입고 춤추며 노래하는 움직임이 무대영상과 잘 어우러졌다. 하지만 영상을 제외한 연출은 단순하고 밋밋했다. 대부분의 연출은 임의로 만든 계단과 조명과 안개가 다였다. 연출의 열악함은 아마도 예산 부족일 것이다.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보이는 움직이는 무대, 하늘 위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땅이 갈라지고 솟아오르는 장면 등은 다 돈으로 만들어진다. 돈은 머릿속의 상상을 현실로 나타내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연출 부분은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광호와 홍도가 부두에서 이별하는 장면만은 뱃머리를 만들어 계단을 높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헤어지는 연인의 슬픔을 극적으로 더 잘 살릴 수 있는 연출이 없어서 아쉬웠다.
<홍도야 우지마라>는 변사가 등장해 이야기를 하며 극이 진행된다. 변사 역을 맡은 박호천은 재밌고 능숙한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했다. 또한 전 출연진이 등장하는 댄스곡(낭랑18세, 홍도야 우지마라 등) 부분에서는 많은 관객들이 따라 부르며 즐거워했다. 배우들이 추는 춤은 다소 단조롭기도 했지만 함께 맞추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했다는 게 전해져 감동을 자아냈다.
홍도와 홍철 역은 배우 이경진, 김경민과 가수 양근화, 이태영으로, 한 명은 극에, 한 명은 노래를 부르는 아바타 형식의 공연이었다. 입체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기도 했지만, 캐릭터 중복 구성이 과연 공연에 효과적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홍도 역인 배우 이경진과 소프라노 양근화는 서로 옷도 다르게 입어 팸플릿의 설명이 없었으면 갑자기 무대에 등장해서 노래하는 역할이 누구인지 몰랐을 것이다. 네 명 모두 훌륭한 가수이자 배우인데 같은 역할보다는 역할을 나눠서 더 다양한 등장인물의 요소를 보였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부분은 음향이 오케스트라에 맞춰서 그런지 노래 중간의 대사가 들리지 않아 답답했다. 배우들이 대사 할 때 오케스트라 소리를 줄이거나 배우의 마이크 음향을 좀 더 키웠으면 관객들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뮤지컬은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전문가의 손길과 노력이 투입된다. 그래서 웨스트앤드나 브로드웨이는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의 호응이 있는 한 공연이 계속된다. 브로드웨이의 대표적 뮤지컬 <렌트>나 웨스트앤드의 대표작<오페라의 유령> 등은 십 년 넘게 공연됐다. 장기 공연이 되어야 수익이 창출되고 그 수익으로 다음 작품의 예산이 마련된다. 우리나라의 창작 뮤지컬은 장기 공연이 어렵기 때문에 좋은 작품도 일회성으로 끝나고 만다. <홍도야 우지마라>는 극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완성도가 높은 뮤지컬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단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나기는 아깝다. 아쉬운 부분을 보완해서 그 옛날 1936년 <홍도야 우지마라>가 당대를 휩쓸었던 것처럼 뮤지컬 <홍도야 우지마라>가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에 휩쓸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