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보이는 풍경

조화와 공존

浩溪 金昌旭 2022. 5. 13. 16:49

스캔 바이 들풀처럼

 

스캔 바이 들풀처럼

 

Cross Border, 

조화와 공존을 향한 가교의 울림

 

글_이혜영 문화예술비평가·교육작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드보르작, 하이든, 멘델스존, 벤자민 브리튼… 이들의 공동점은 무엇일까? 실내악을 연주할 때 직접 비올라 파트를 연주한 작곡가들이다. 첼로나 바이올린의 중간음역대인 비올라는 음량이나 음색이 귀를 확 사로잡지는 못한다. 독주곡과 협주곡도 거의 없고 고전시대에는 무도회 악단 편성에서 빠지는 것이 예사였다. 이렇게 처량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비올라지만, 유명 작곡가들을 사로잡은 데에는 그만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4월 6일 금정문화회관 수요음악회에서 네 명의 비올리스트 최하람, 홍진선, 김규, 박명훈의 오직 비올라 네 대로 구성된 보기 드문 실내악 공연 ‘올포드 비올라 콰르텟’(For Four Violas)이 바로 그 매력으로 봄밤 관객들의 감성을 두드렸다.

 

오프닝 무대는 비올리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프랑크 브릿지(F. Bridge)가 자신과 스승을 위해서 쓴 곡으로 알려진 「두 대의 비올라를 위한 애가」(Lament for 2 Violas)였다. 잔잔하고 느리게 끊어질 듯 이어진 선율이 마치 봄 한철 만개한 후 눈처럼 흩날리며 떨어지는 벚꽃 잎을 연상시켰다. 세컨 비올라 파트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제목 ‘Lament'가 함의하는 슬픔을 넘어서는 비탄이라는 의미 그 자체가 되어 봄밤 관람객들의 감성을 두드렸다. 퍼스트 비올라가 합류하면시 이어지는 중반부는 마치 화려했던 옛날이 참 좋았었다고 추억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짧기만 한 봄 한 철의 격정이 끝나고 나면 꽃비가 되어 내리고 결국 바닥에 떨어져 밟힐 것을 알기 때문에 만개한 꽃잎을 보면서 온전히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치럼 격정으로 치닫는 중후반부에서 두 대의 비올라가 들려주는 선율은 구슬프고 애잔했다.

 

두 번째로 연주한 If my complaints could passions move는 눈물로 아침을 시작하고 눈물 속에서 잠들었다는 멜랑콜리의 화신과도 같은 존 다울랜드(John Dowland의 원곡을 코바야카와(M. Kobayakawa)가 비올라를 위해 편곡한 곡이다. 바이올린처럼 반짝이거나 첼로처럼 힘이 넘치는 악기로 연주했다면 그 슬픔과 낭만을 잘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네 명의 비올리스트들이 때로는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때로는 슬픔에 잠겨 흐느끼는 듯 때로는 다시 일정을 회복하기를 갈망하는 듯 묵직하면서도 유연한 음색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세 번째 무대는 김종완 작곡 For Four Violas의 한국 초연 무대였다. 19세기 이후에 와서야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비올라는 현대곡이 많다. 그래서 비올라 곡들은 대중적이지 않다고들 한다. 이 곡은 처음 들어서는 사랑에 빠지기 힘든 난해한 곡들과 달리 듣자마자 아름답다는 느낌이 드는 선율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다고 필자가 현대음악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20세기 아방가르드한 것으로 치우치는 것에 대한 반성으로 고전적인 것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던 것은 연주자와 관객과 멀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주자들은 초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인 호흡으로 이유 있는 무대를 보여주었고 관객들의 감성을 두드리기에 충분했다.

 

1부의 마지막을 바흐(Bach)의 「파르티타」 제2번 중 샤콘느(Partita No.2 in d minor for 4 Violas, BWV.1004. V. Chaconne)로 장식하고 2부는 요크 보웬(York BoweN)의 「네 대의 비올라를 위한 판타지」(Fantasia for 4 Violas, Op.41)로 열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비올라의 음색을 바이올린보다 선호했던 작곡가이다. 이 곡은 애수 어린 선율로 시작해서 점차 빠른 음악으로 역동적인 에너지를 분출했다. 애가적인 악상들을 표현력 있게 풀어나간 연주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곡의 충만한 서정성을 네 비올리스트의 연주로 만끽할 수 있었다.

 

연주의 피날레는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의 대표곡 「탱고의 역사」(Histoire du Tango)였다. 1악장 ‘1900년 보르델로’(Bordelo), 2악장 ‘1930년 카페', 3악장 ‘1960년 나이트클럽', 4악장은 ‘오늘날의 콘서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날은 1, 2악장만 연주하였다. 이 곡은 ‘비올라'와 무척 닮은 구석이 많다. 지난해는 피아졸라(Piasola)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이 국내 대형 콘서트홀에서 열리기까지 했으니 지금은 탱고가 제3세계 음악을 상징하는 대표 장르로 대접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첫 악장인 보르델로(Bordelo)는 사창가라는 의미다. 100년 전 선술집, 매음굴의 음악이었던 탱고가 카페와 나이트클럽에서 콘서트홀로 음악사라는 거대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전통적으로 비올리스트가 양성되는 과정이 좋지 않았기에 오랫동안 다른 현악기들에 비해서 존재감이 낮았던 악기. [비올라 조크](Viola Joke)가 책으로 출판될 만큼 유독 쓰라린 유머와 비아냥거리는 농담의 표정이 되곤 했던 연주자들. 다른 악기를 위해 쓰인 곡에 편곡 작업을 거쳐야 하는 불편함. 탱고의 슬픈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진 이 곡을 들으면서 화려하진 않지만 풍부하고 우아하며 묵직하면서도 유연한 음색을 지닌 매력적인 악기 비올라가 좀 더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타자(他者)에 대한 반목과 질투가 만연한 현대사회가 코로나라는 팬데믹(Pandemic)과 마주하면서 거리두기가 미덕이 되어버린 지금 유무형의 새로운 경계(Border)들이 생겨나고 있다. 오랫동안 분열과 배척을 극복하고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노력들이 퇴색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무고한 인명 피해를 낳고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부터 눈에 보이지는 잃지만 강력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는 타자에 대한 배척에 이르기까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어서 두렵기까지 하다. 문화예술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러한 때에 상반된 두 음역을 넘나드는 유연성과 슬프지만 낭만적이고 어둡지만 달콤한 양면성을 지닌 비올라의 음색이 깊고 묵직한 위안이 되었다. Cross Border! 경계를 넘어 조화(調和)와 공존(共存)을 향한 가교(架橋)의 울림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