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민오케스트라

희망으로 넘다

浩溪 金昌旭 2012. 11. 30. 15:05

부산일보 2012. 10. 30 (21)

 

 [기자칼럼 '틈']

'현실의 벽' 희망으로 넘는 부산시민오케스트라

 

부산시민오케스트라 시민위원 1호는 김영호 씨다. 맨 먼저 한 달에 5만 원씩 내겠다고 달려온 그는 '보통 사람'이었다.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반인이다. 그래도 1년에 음악회만 130~140차례 찾는 음악 애호가다.

 

"경제적으론 좋아졌지만 정서가 메말라 있잖아요. 삶을 윤택하게 하는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왕따나 학교 폭력에도 도움이 되는 일 같아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박경희는 실력파 연주자다. 빈 국립음대를 나와 인스브루크 시립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울산시향과 창원시향 악장을 지냈다. 개인적으로 오퍼스앙상블 음악감독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부산시민오케스트라 악장이 됐다.

 

박경희는 "제가 좋아 음악을 해왔는데 이젠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하자, 생각해 참여했다"며 "(시민오케스트라가) 과연 될까, 의문도 있지만 점점 희망이 커진다. 어느 악단 못지않은 음악을 선사하겠다"고 말한다.

 

부산시민오케스트라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좋은 뜻'이 그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시민 355명이 한 달에 5만 원씩 내서 일 년에 네 차례 정기연주회를 열고 이웃들을 위한 소규모 공연도 펼치자는 뜻이다. 지휘자 장진, 음악평론가 김창욱, 치과의사 최우석이 처음 뜻을 모았고, 지난 7월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지며 굴러가기 시작했다.

 

시민오케스트라는 60명 규모가 목표인데 벌써 50명이 모였다. 2관 편성이 가능한 규모다. 부산 울산 창원의 시립교향악단과 음악 전공자들 위주의 실력자들이 모였다.

 

그래도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8월 모집에 나선 지 넉 달이지만 모인 시민위원이 100명에 좀 못 미친다. 김창욱은 "지인들을 독려하고 팸플릿 6천 장을 만들어 공연장마다 찾아다니며 뿌렸는데 참 안 모인다"며 "마음만 자꾸 급해진다"고 말했다. 시민위원으로 공무원 소설가 사회복지사 목사 등이 찾아왔지만, 지인들에게 이끌려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자발적으로 찾아온 시민은 몇 안 된다. 1년에 60만 원을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창립연주회가 내년 3월 9일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니 일정이 촉박한 게 사실이다. 겨우 3개월 남짓 남았다. 그렇다고 희망을 잃은 사람은 없다.

 

지난 15일 창립총회는 희망을 확인한 자리였다. 어떤 참석자는 "몇 년 치를 내겠다"고 했고 다른 참석자는 "기업과 뜻있는 사람을 모아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도 "355명의 시민의 힘을 모으자는 초심은 흔들리지 않았고 계속 동참을 유도하자는 뜻을 재확인했다"고 김창욱은 전했다.

 

그들은 음악이 제대로 대접받게 하자는 뜻도 지키겠다고 한다. 보통 민간 오케스트라가 연주 일정이 잡히면 단원들은 연습 5차례에 공연 1차례 정도 하는데, 그러고 손에 쥐는 돈이 적게는 3만 원, 많아야 15만 원 정도다. 시민오케스트라 사람들로선 "말도 안 되는 이런 현실을 고치겠다"고 한다.

 

지금 부산시민오케스트라가 걷는 길은 전례가 없었다. 그 길에 새로운 참가자들의 발걸음이 더해지면 부산 음악을 풍성하게 할 빛나는 전통이 될 수도 있고, 발걸음이 잦아들면 한때 그런 일을 벌였다는 추억에 머물 수도 있다. 억지로 끌어들일 수도, 대신 걸어줄 수도 없다. 그래서 부산시민오케스트라는 부산 음악계가 모처럼 나선 시민운동이기도 하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