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보이는 풍경

[공연평] 2021 부산 오페라 위크

浩溪 金昌旭 2021. 11. 2. 13:36

'예술부산' 2021년 11월호(통권 제197호)

 

'예술부산' 2021년 11월호(통권 제197호)

 

 

2021 부산 오페라 위크

오페라가 먼저다

 

글_김창욱 음악평론가

 

오페라(opera, 歌劇)는 음악예술은 물론, 언어예술·시각예술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총체예술이다. 그런 만큼 오페라 공연에는 합창과 오케스트라, 춤과 연극을 수행할 수 있는 대규모의 인력 동원이 불가피하다. 더구나 막대한 공연 비용은 자주, 그리고 즐겨 무대화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런 까닭에, 지난 2016년부터 지역 오페라 육성과 오페라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매년 개최해 온 ‘부산 오페라 위크’는 모처럼의 오페라 향연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올해 ‘부산 오페라 위크’는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17일까지 (재)부산문화회관, (재)영화의전당, 금정문화회관 등이 공동 주최했는데, 부산의 공공극장이 직접 공연을 기획·제작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각각의 무대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10월 15~17일 부산문화회관), 비제의 ‘카르멘’(11월 6일 영화의 전당), 부산오페라 갈라 ‘가곡과 아리아의 밤’(11월 17일 금정문화회관) 등으로 꾸며졌다.

 

그러나 콘서트 형식의 ‘카르멘’이나 하이라이트만 뽑아 만든 갈라(gala) 형식의 ‘가곡과 아리아의 밤’과는 달리, ‘피가로의 결혼’은 전막 오페라의 정격(正格) 공연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사흘에 걸쳐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피가로의 결혼’은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와 더불어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로 평가되며, 특히 전 4막으로 구성된 ‘피가로의 결혼’은 풍자의 미학과 유쾌한 희극적 요소가 두루 결합된 18세기의 대표적인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가극)로 손꼽힌다.

 

오페라는 알마비바 백작의 시종인 피가로와 백작 부인의 시녀 수잔나의 결혼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백작이 시녀를 상대로 행사하려는 초야권(初夜權, 중세 때 봉건 영주가 자신이 부리는 농노의 딸에 대해 처녀성을 취할 수 있는 권리)라는 악습, 그리고 시녀가 백작을 골탕 먹이는 설정, 백작부인과 시녀 수잔나가 서로 옷을 바꿔 입는 장면 등 귀족사회와 신분제도를 풍자하는 요소들이 즐겨 등장한다. 물론 이같은 장치는 계급사회에서 시민사회로 전환되는 18세기 유럽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이 무대에는 부산에서 비약적인 활약상을 보이는 신예 및 중견 솔리스트들이 대거 무대에 올랐다.

 

첫 공연에는 바리톤 이광근(피가로), 소프라노 박하나(수잔나), 바리톤 윤오건(알마비바 백작), 소프라노 정혜민(백작부인), 메조 소프라노 이지영(케루비노), 베이스 박상진(바르톨로), 테너 임찬우(바질리오), 바리톤 김경한(안토니오), 소프라노 박해미(바르바리나)를 비롯해서 지휘자 윤상운이 이끄는 챔버오케스트라 ‘카메라타 부산’(36명)과 부산오페라합창단(16명), 그리고 코리아주니어발레컴퍼니(9명)가 참여했다.

 

오케스트라의 경쾌한 서곡(overture) 연주에 이어, 곧바로 막이 올랐다. 무대장치는 간명했고, 조명은 은근했다. 서곡 연주 중에 발레는 정적인 무대의 단조로움을 피했고, 시청각적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잇따라 등장한 솔리스트들은 연주력은 물론 연기력까지 빼어났다.

 

이광근은 순진무구한 피가로를, 박하나는 깜찍한 새침데기 수잔나를, 윤오건은 능청스런 알마비바를, 정혜민은 품위 있는 백작부인을, 그리고 박상진은 중후한 바르톨로를 각각 수월하게 소화해 냈다. 특히 이지영은 백작의 하녀 케루비노의 자유분방함을, 김경한은 다소 과장적이었으되 안토니오의 술 주정뱅이 연기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물론 음악선생 바질리오를 맡은 임찬우의 독특한 음색과 희극적 제스처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오케스트라 연주는 섬세했고, 독창과 중창, 합창과도 시종 조화로운 음향을 구현해 냈다. 더구나 바로크시대에 즐겨 사용된 쳄발로의 계속저음(basso continuo)은 사뭇 고전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편 ‘부산 오페라 위크’는 앞서 지역 오페라 육성과 오페라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매년 개최해 왔다. 그러나 부산시가 ‘부산 오페라 위크’를 지원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따로 있다. 오랫동안 부산시가 추진해 왔던 부산오페라하우스 건립 사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 저항을 완화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대한 현직 부산시장의 의지는 여전히 충만해 있다.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부산오페라하우스 건립도 차질없이 추진해 부산이 ‘문화관광 매력도시’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던 터다.

 

그런 까닭에 올해 6월 부산시는 오페라하우스 건립 사업비를 2017년 산정한 2,500억 원에서 550억 원이 증액된 3,050억 원으로 조정했고, 부족분은 부산시의 자체 재원을 조달해서라도 오페라하우스를 완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오페라하우스는 ‘하우스’이지 ‘오페라’가 아니다. 부산시의 전체 예산 중 문화예술분야 예산은 전체의 2% 수준이다. 3,000억 원이 훌쩍 넘어서는 하우스를 건립하고 나서는? 해마다 최소 200억 원 이상의 운영비도 투입해야 할 것이다.

 

하우스 건립과 운영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다면, 문화예술 예산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쩌면 ‘부산 오페라 위크’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오페라 대신에 하우스만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지난 2017년 부산시의회가 ‘부산시 문화정책 인지도 및 만족도' 설문조사를 행한 바 있다. 일반 시민, 관계 전문가와 종사자, 관계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총 600명). 이에 따르면, 부산시 미래 문화비전을 위해서는 문화시설 건립 등 시설투자(11.2%)에 비해 운영 효율화(25.3%)나 인력 양성(23.5%), 전문기획·연출가에 의한 프로그램 개발 등이 중장기 계획 설정(20.8%) 아래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오페라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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