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치다

[날개 꺾인 부산 기초예술] 하. 전문가 좌담회

浩溪 金昌旭 2017. 5. 1. 06:18

 

"대학별 커리큘럼 차별화예술 학과 특성화 서둘러야"

 

부산일보2017. 5. 1 (24)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지난달 27일 오후 부산일보 4층 회의실에서 '날개 꺾인 부산지역 기초예술'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전문가 좌담회가 열렸다. 정종회 기자 jjh@

 

날개 꺾인 부산지역 기초예술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전문가 좌담회가 지난달 27일 오후 부산일보 4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기초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주목하며 교육과 인프라, 콘텐츠 분야에 걸쳐 종합적인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창욱 음악평론가

다양한 콘텐츠 발굴·개발

문화기획자 양성 교육을

 

김동석 부산예총 회장

한예종 부산 캠퍼스 등

국공립 교육기관 설립을

 

윤여숙 부산무용협회 회장

취업 잣대로 학과 평가 문제

활동률 중심으로 평가해야

 

원향미 부산민예총 정책위원장

동주민센터·주민자치공간

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

 

강주미 부산민예총 춤위원장

예술가와 시민들 연결

문화도시적 설계 필요한 때

 

조정윤 부산문화재단 홍보팀장

세계는 탈극장화 추세

공연장 중심 사고 탈피를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창욱 음악평론가, 윤여숙 부산무용협회 회장, 강주미 부산민예총 춤위원장, 조정윤 부산문화재단 홍보팀장, 원향미 부산민예총 정책위원장, 김동석 부산예총 회장.

 

- 기초예술의 뿌리인 인재를 길러낼 대학교육이 황폐화하고 있다. 무엇이 가장 문제인가.

 

김동석=순수예술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폐과도 줄을 잇고 있는데,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폐과가 되면서 학생, 교수, 학교, 교육정책 중 아무 책임이 없는 학생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대학이 경영논리에 빠져 학생을 볼모로 구조조정을 하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윤여숙=교육부가 취업률 잣대로 대학과 학과 평가를 하는데, 예술 분야는 '활동률'로 평가해야 한다. 특히 무용 분야는 돈을 안 벌더라도 공연·교육 등 미래를 위한 예술적인 축적 활동을 하는 졸업생들이 많다.

 

강주미=우리나라는 70년대 이후 예술 인프라 형성을 대학 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형적 구조를 지니게 됐다. 한국예술의 이러한 뿌리와 역사성을 생각한다면 대학은 사회적 책무 중 하나로 기초예술 분야를 보호·육성해야 한다. '예술 분야는 취업률이 낮을수록 좋은 학과다'란 말을 되새겨봐야 한다.

 

원향미=예술 분야는 돈을 못 벌어오면서 쓰기만 한다는 인식이 있다. 예술 관련 학과 평가의 경우 취업률 잣대에 공연·전시 등 창작활동까지 반영하도록 하고 있지만 증빙절차 등이 까다로워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이 안 되는 게 문제다.

 

-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기초예술의 뿌리'를 길러낼 방안이 있다면.

 

김창욱=현재 대학 체계에 변화를 줘야 한다. 무용학과만 봐도 대학별 커리큘럼이 거의 똑같다. 대학마다 예술 관련 특성화를 해, 이 분야를 배우려면 꼭 이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나면 수요자가 많아질 것이다.

 

김동석=사학에 맡기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순수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한다면, 한예종 부산캠퍼스나 시립예술대학 등을 설립해 정부나 지자체에서 책임 있게 교육을 맡아줘야 한다. 폐과된 학과부터 개설해 점차 규모를 키워나가는 방식으로 하면 된다.

 

윤여숙=부산의 인구와 문화적 역량을 고려하면 대학에 앞서 국립부산국악고등학교도 있어야 한다. 미래의 무용 전공자들이 사라지면 동래야류, 동래학춤, 동래고무 등 지역의 전통춤 계승의 맥이 머지않아 끊기게 될지도 모른다.

 

조정윤=학위적 관점에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도 하버드대 철학과를 다녔다. 퍼포밍아트 스쿨, 드라마 스쿨처럼 공연예술에 열의만 있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을 만들고, 대학의 여러 극장과 연계하면 더욱 효과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원향미=시민 애호가 같은 문화예술의 적극적인 향유층을 길러내는 교육도 필요하다. 아울러 꼭 대학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인문경험을 통해서 기초예술 종사자들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초··고 공교육 체계에서 문화예술 교육이 정상화되고, 그 안에서 기초예술 진입 경로가 더 다양해져야 한다.

 

- 창작활동에 대한 지원 부분은 어떤가. 공연장 건립이나 창작공간 지원 등 각종 정책에도 불구하고 기초예술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강주미=폐교나 구 시가지 건물 등을 예술인에게 제공하면서 작업공간 부족 문제가 많이 해소됐지만 공간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면서 예술의 생산 행위가 시민과의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예술인과 시민을 연결하는 문화도시적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원향미=공유의 관점으로 공간을 운영하면 폐쇄성을 극복할 수 있다. 동주민센터나 주민자치공간 등을 밤에 예술인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한다면 생활문화공간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조정윤=관의 입장에서 공연장 중심의 사고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세계의 예술은 탈극장화하는 추세다. 이제는 공간의 확장성을 고민해야 한다. 골목이 무대가 될 수도 있고, 거리 연습 자체가 홍보 겸 공연이 될 수도 있다.

 

김동석=장르별로 전문 공연장을 균형 있게 갖춰야 한다. 문화시설 건립에 대해 운영비 문제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생각한다면 지하철·버스 운영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바라봐야 한다.

 

윤여숙=대학에 무료로 빌릴 수 있는 소극장이 있지만 정작 예술인들은 잘 모른다. 공간 활용에 대한 네트워크가 돼, 시간대별로 어느 공간을 쓸 수 있는지 실시간 확인·예약 시스템을 갖추면 유용할 것이다.

 

- 공간 얘기와 함께 빠질 수 없는 게 콘텐츠다. 인프라만큼이나 콘텐츠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조정윤=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메이드 인 부산' 명품 공연에 대한 구상은 누구나 갖고 있다. 하지만 뚝딱 만들어내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근원적으로 기초예술이 산업화로 이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에 대한 고민과 함께 종합적인 계획을 짜야 한다.

 

원향미=특정 공연, 킬러 콘텐츠를 집중 육성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소규모 콘텐츠를 다양하게 많이 만들어야 한다. 기초예술이 살아나려면 시민들이 일상에서 튼튼하게 받쳐줘야 한다. 정책의 초점을 다양성에 맞췄으면 좋겠다.

 

김창욱=문화콘텐츠에 대한 발굴, 개발, 육성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려면 문화기획자를 양성하는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생산자는 있지만 판로를 개척할 인력이 없다 보니, 생산품은 남아돌고 예술가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이다.

 

김동석=아미뇽이나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판만 펼쳐주면 해마다 새로운 콘텐츠가 절로 생겨난다. 우리도 청년 예술가들이 부산에 머물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고, 부산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널리 보여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 마지막으로 기초예술 활성화를 위해 꼭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

 

김창욱=미래 세대에게 비전을 제시해줘야 한다. 부산에서 청년들이 예술을 하면서 수익도 창출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게 기성세대가 할 일이다.

 

조정윤=다시 시작한다는 차원에서 우선 우리가 잘했던 것들에 집중하고, 기회의 확장이란 측면에서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다양한 판을 벌였으면 좋겠다.

 

김동석=공공지원이 공연장 쪽에만 기형적으로 집중돼 있는데 콘텐츠, 기초예술의 육성이 균형 있게 함께 가야 한다.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예산 지원이 있어야 청년들이 떠나지 않고, 부산 문화가 살아난다.

 

강주미=결국은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문화적 감성은 지각이 열려 있을 때 깨우치는 게 중요하다. 유아교육부터 교과 독립을 이뤄 기초예술 교육이 탄탄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윤여숙=요즘 초··고교생들은 우리의 것,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이 없다. 입시교육 커리큘럼 속에서도 예술적 소양을 기르는 '감성교육'이 필요하다.

 

원향미=청년예술인과 청년문화에 대한 지원만큼이나 이들이 중장년까지 계속 예술을 할 수 있는 모델로서 허리 세대, 중견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교육도 필요하다. 더 크게는 공공문화정책의 방향을 다시 세우고, 정부가 우리 사회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할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

 

정리=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일시 : 2017427일 오후 5

장소 : 부산일보사 4층 회의실

사회 : 정달식 부산일보 문화부장 

 

참석자 (가나다 순)

강주미 부산민예총 춤위원장

김동석 부산예총 회장

김창욱 음악평론가

원향미 부산민예총 정책위원장

윤여숙 부산무용협회 회장

조정윤 부산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