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면 | 입력시간: 2010-09-30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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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 수이재·동아대 주최 '부산 문화비 탐방' 7시간 함께하니...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여기 에덴공원의 정상에 서서 뭔가를 크게 꾸짖는 듯하지 않아요? 때마침 이 비석에는 그의 절창 '깃발'이 새겨져 있습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했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그의 목청이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개인 명예나 건립 주체 내세우는 일은 지양해야" 한목소리
40여 시민·예술인 동참… 청마시비, 김정한 문학비 등 탐방
· 부산 문학비의 단출한 전형
부산 사하구 에덴공원 청마 유치환의 시비 앞에서 주경업 부산민학회 회장의 목소리가 굵어졌다 그는 "이 청마 시비는 부산 문학비의 전형과 같다"고 강조하는 중이다. 햇살 따사롭던 지난 28일, 또따또가 내 문화공간 '수이재'와 동아대가 공동으로 마련한 '부산의 문화비 탐방' 행사. '사회적 합의에 의해 모범적으로 조성된 문화비를 탐방하고 문화비 건립의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한다'는 게 탐방의 취지다. 부산 시민들과 문인·예술인 40여 명은 이날 오전부터 수정가로공원을 출발해 에덴공원, 강서 강변도로, 금강공원, 범어사 일주도로 등 부산의 주요 문화비들이 깃든 곳을 일일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에덴공원의 청마 시비는 1967년 예기치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청마를 기려 많은 문인과 시민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74년 세운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예술인들의 문학적 그리움이 한 틈 빠짐없이 다 들어 있다는 것. 글씨 역시 향파 이주홍 선생의 솜씨다. 수이재 대표 최원준 시인의 설명은 이어진다. "시비 뒷면을 보세요. 청마의 간단한 이력과 '청마를 기리는 사람들'이라는 건립 주체의 간결한 언급 말고는 아무 것도 없지요." 건립 대상보다는 건립 주체를 내세우는 최근의 시비들이 크게 깨우쳐야 할 부분이며, 시비란 무릇 이래야 하지 않을까라는 얘기다. 인근에 서 있는 오태균 음악비 역시 마찬가지다. 부산 교향악 운동의 선구자인 오태균 선생을 기려 후학들이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곡이 오태균 선생을 음악의 길로 이끌었다고 김창욱 음악평론가는 설명했다) 첫 마디만 단출하게 새겨 세운 것인데, 음악 관련 빗돌로서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 단아하고 소박하게 예술정신 기려
강서 강변도로로 부신 가을 햇살이 떨어졌다. 거기에는 7개의 문화비가 수백m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생명의 시원인 강, 민족의 젖줄인 낙동강에 문화비들이 서 있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남다른 문학적 성취를 남긴 예술인 조지훈 박목월 이은상 금수현의 비를 둘러봤다.
강 자락을 뒤로 하고 일행들이 도착한 곳은 동래 금강공원이었다. 도심의 혼돈이 느껴지지 않는 안온한 느낌이 마치 딴 세상 같다. 거기서 4개의 문화비를 만났다. 부산 문학의 터를 닦은 향파 이주홍 선생의 시비가 벙긋 피어난 꽃무릇(석산화)을 벗 삼고 있었고, 독보적인 개성으로 사진예술을 빛냈던 독보 허종배의 사진비, 아동문학의 큰 봉우리 최계락의 시비, 현대시조의 절창 이영도의 시비들이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금정산 문화의 거리'라 명명된 범어사 일주도로에서도 김정한 문학비, 이주홍 시비, 김종식 그림비 같은 문화비를 차례로 감상했다.
· 사회적 합의로 세우는 공공 자산
일행들은 작고 예술가들의 문화비를 둘러보는 사이 예인들의 삶과 거기서 꽃핀 예향에 취했다. 입에서는 시가,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7시간을 꼬박 바친 문화비 탐방에도 고단한 기색은커녕 한 치 흔들림 없는 눈빛들.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조해훈 시인은 "감동을 주는 문화비란 곧 뛰어난 예술세계를 엄정한 사회적 합의로 인정받은 공공의 문화자산"이라고 했다.
그러니 문화비 건립의 바람직한 기준은 저절로 드러난다. 평단이 두루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의 것이어야 한다는 점, 장소성(性)과 비석과 시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소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의태 시인은 "개인의 명예를 위한 빗돌이나 사회적 논란이 있는 비석, 혹은 건립주체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경우는 지양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탐방 결과 비석 글자에 오자가 있거나 탈색한 것이 더러 눈에 띄었고, 비석의 기단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아쉬운 비석들도 있었다. 차재근 또따또가 대표는 "향후 부산의 소중한 문화비들을 청결하게 하는 작업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탐방에는 박옥위 윤상운 문진우 김호철 김진문 방영식 김해경 이현주 나여경 박이훈 김명화 정훈 등의 문화예술인이 시민들과 동참했다.
김건수 기자 kswoo333@busan.com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여기 에덴공원의 정상에 서서 뭔가를 크게 꾸짖는 듯하지 않아요? 때마침 이 비석에는 그의 절창 '깃발'이 새겨져 있습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했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그의 목청이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개인 명예나 건립 주체 내세우는 일은 지양해야" 한목소리
40여 시민·예술인 동참… 청마시비, 김정한 문학비 등 탐방
· 부산 문학비의 단출한 전형
부산 사하구 에덴공원 청마 유치환의 시비 앞에서 주경업 부산민학회 회장의 목소리가 굵어졌다 그는 "이 청마 시비는 부산 문학비의 전형과 같다"고 강조하는 중이다. 햇살 따사롭던 지난 28일, 또따또가 내 문화공간 '수이재'와 동아대가 공동으로 마련한 '부산의 문화비 탐방' 행사. '사회적 합의에 의해 모범적으로 조성된 문화비를 탐방하고 문화비 건립의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한다'는 게 탐방의 취지다. 부산 시민들과 문인·예술인 40여 명은 이날 오전부터 수정가로공원을 출발해 에덴공원, 강서 강변도로, 금강공원, 범어사 일주도로 등 부산의 주요 문화비들이 깃든 곳을 일일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에덴공원의 청마 시비는 1967년 예기치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청마를 기려 많은 문인과 시민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74년 세운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예술인들의 문학적 그리움이 한 틈 빠짐없이 다 들어 있다는 것. 글씨 역시 향파 이주홍 선생의 솜씨다. 수이재 대표 최원준 시인의 설명은 이어진다. "시비 뒷면을 보세요. 청마의 간단한 이력과 '청마를 기리는 사람들'이라는 건립 주체의 간결한 언급 말고는 아무 것도 없지요." 건립 대상보다는 건립 주체를 내세우는 최근의 시비들이 크게 깨우쳐야 할 부분이며, 시비란 무릇 이래야 하지 않을까라는 얘기다. 인근에 서 있는 오태균 음악비 역시 마찬가지다. 부산 교향악 운동의 선구자인 오태균 선생을 기려 후학들이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곡이 오태균 선생을 음악의 길로 이끌었다고 김창욱 음악평론가는 설명했다) 첫 마디만 단출하게 새겨 세운 것인데, 음악 관련 빗돌로서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 단아하고 소박하게 예술정신 기려
강서 강변도로로 부신 가을 햇살이 떨어졌다. 거기에는 7개의 문화비가 수백m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생명의 시원인 강, 민족의 젖줄인 낙동강에 문화비들이 서 있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남다른 문학적 성취를 남긴 예술인 조지훈 박목월 이은상 금수현의 비를 둘러봤다.
강 자락을 뒤로 하고 일행들이 도착한 곳은 동래 금강공원이었다. 도심의 혼돈이 느껴지지 않는 안온한 느낌이 마치 딴 세상 같다. 거기서 4개의 문화비를 만났다. 부산 문학의 터를 닦은 향파 이주홍 선생의 시비가 벙긋 피어난 꽃무릇(석산화)을 벗 삼고 있었고, 독보적인 개성으로 사진예술을 빛냈던 독보 허종배의 사진비, 아동문학의 큰 봉우리 최계락의 시비, 현대시조의 절창 이영도의 시비들이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금정산 문화의 거리'라 명명된 범어사 일주도로에서도 김정한 문학비, 이주홍 시비, 김종식 그림비 같은 문화비를 차례로 감상했다.
· 사회적 합의로 세우는 공공 자산
일행들은 작고 예술가들의 문화비를 둘러보는 사이 예인들의 삶과 거기서 꽃핀 예향에 취했다. 입에서는 시가,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7시간을 꼬박 바친 문화비 탐방에도 고단한 기색은커녕 한 치 흔들림 없는 눈빛들.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조해훈 시인은 "감동을 주는 문화비란 곧 뛰어난 예술세계를 엄정한 사회적 합의로 인정받은 공공의 문화자산"이라고 했다.
그러니 문화비 건립의 바람직한 기준은 저절로 드러난다. 평단이 두루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의 것이어야 한다는 점, 장소성(性)과 비석과 시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소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의태 시인은 "개인의 명예를 위한 빗돌이나 사회적 논란이 있는 비석, 혹은 건립주체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경우는 지양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탐방 결과 비석 글자에 오자가 있거나 탈색한 것이 더러 눈에 띄었고, 비석의 기단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아쉬운 비석들도 있었다. 차재근 또따또가 대표는 "향후 부산의 소중한 문화비들을 청결하게 하는 작업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탐방에는 박옥위 윤상운 문진우 김호철 김진문 방영식 김해경 이현주 나여경 박이훈 김명화 정훈 등의 문화예술인이 시민들과 동참했다.
김건수 기자 kswoo333@busan.com
문화공간 수이재·동아대 주최 '부산 문화비 탐방' 7시간 함께하니...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여기 에덴공원의 정상에 서서 뭔가를 크게 꾸짖는 듯하지 않아요? 때마침 이 비석에는 그의 절창 '깃발'이 새겨져 있습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했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그의 목청이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개인 명예나 건립 주체 내세우는 일은 지양해야" 한목소리
40여 시민·예술인 동참… 청마시비, 김정한 문학비 등 탐방
· 부산 문학비의 단출한 전형
부산 사하구 에덴공원 청마 유치환의 시비 앞에서 주경업 부산민학회 회장의 목소리가 굵어졌다 그는 "이 청마 시비는 부산 문학비의 전형과 같다"고 강조하는 중이다. 햇살 따사롭던 지난 28일, 또따또가 내 문화공간 '수이재'와 동아대가 공동으로 마련한 '부산의 문화비 탐방' 행사. '사회적 합의에 의해 모범적으로 조성된 문화비를 탐방하고 문화비 건립의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한다'는 게 탐방의 취지다. 부산 시민들과 문인·예술인 40여 명은 이날 오전부터 수정가로공원을 출발해 에덴공원, 강서 강변도로, 금강공원, 범어사 일주도로 등 부산의 주요 문화비들이 깃든 곳을 일일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에덴공원의 청마 시비는 1967년 예기치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청마를 기려 많은 문인과 시민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74년 세운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예술인들의 문학적 그리움이 한 틈 빠짐없이 다 들어 있다는 것. 글씨 역시 향파 이주홍 선생의 솜씨다. 수이재 대표 최원준 시인의 설명은 이어진다. "시비 뒷면을 보세요. 청마의 간단한 이력과 '청마를 기리는 사람들'이라는 건립 주체의 간결한 언급 말고는 아무 것도 없지요." 건립 대상보다는 건립 주체를 내세우는 최근의 시비들이 크게 깨우쳐야 할 부분이며, 시비란 무릇 이래야 하지 않을까라는 얘기다. 인근에 서 있는 오태균 음악비 역시 마찬가지다. 부산 교향악 운동의 선구자인 오태균 선생을 기려 후학들이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곡이 오태균 선생을 음악의 길로 이끌었다고 김창욱 음악평론가는 설명했다) 첫 마디만 단출하게 새겨 세운 것인데, 음악 관련 빗돌로서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 단아하고 소박하게 예술정신 기려
강서 강변도로로 부신 가을 햇살이 떨어졌다. 거기에는 7개의 문화비가 수백m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생명의 시원인 강, 민족의 젖줄인 낙동강에 문화비들이 서 있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남다른 문학적 성취를 남긴 예술인 조지훈 박목월 이은상 금수현의 비를 둘러봤다.
강 자락을 뒤로 하고 일행들이 도착한 곳은 동래 금강공원이었다. 도심의 혼돈이 느껴지지 않는 안온한 느낌이 마치 딴 세상 같다. 거기서 4개의 문화비를 만났다. 부산 문학의 터를 닦은 향파 이주홍 선생의 시비가 벙긋 피어난 꽃무릇(석산화)을 벗 삼고 있었고, 독보적인 개성으로 사진예술을 빛냈던 독보 허종배의 사진비, 아동문학의 큰 봉우리 최계락의 시비, 현대시조의 절창 이영도의 시비들이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금정산 문화의 거리'라 명명된 범어사 일주도로에서도 김정한 문학비, 이주홍 시비, 김종식 그림비 같은 문화비를 차례로 감상했다.
· 사회적 합의로 세우는 공공 자산
일행들은 작고 예술가들의 문화비를 둘러보는 사이 예인들의 삶과 거기서 꽃핀 예향에 취했다. 입에서는 시가,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7시간을 꼬박 바친 문화비 탐방에도 고단한 기색은커녕 한 치 흔들림 없는 눈빛들.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조해훈 시인은 "감동을 주는 문화비란 곧 뛰어난 예술세계를 엄정한 사회적 합의로 인정받은 공공의 문화자산"이라고 했다.
그러니 문화비 건립의 바람직한 기준은 저절로 드러난다. 평단이 두루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의 것이어야 한다는 점, 장소성(性)과 비석과 시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소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의태 시인은 "개인의 명예를 위한 빗돌이나 사회적 논란이 있는 비석, 혹은 건립주체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경우는 지양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탐방 결과 비석 글자에 오자가 있거나 탈색한 것이 더러 눈에 띄었고, 비석의 기단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아쉬운 비석들도 있었다. 차재근 또따또가 대표는 "향후 부산의 소중한 문화비들을 청결하게 하는 작업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탐방에는 박옥위 윤상운 문진우 김호철 김진문 방영식 김해경 이현주 나여경 박이훈 김명화 정훈 등의 문화예술인이 시민들과 동참했다.
김건수 기자 kswoo333@busan.com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여기 에덴공원의 정상에 서서 뭔가를 크게 꾸짖는 듯하지 않아요? 때마침 이 비석에는 그의 절창 '깃발'이 새겨져 있습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했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그의 목청이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개인 명예나 건립 주체 내세우는 일은 지양해야" 한목소리
40여 시민·예술인 동참… 청마시비, 김정한 문학비 등 탐방
· 부산 문학비의 단출한 전형
부산 사하구 에덴공원 청마 유치환의 시비 앞에서 주경업 부산민학회 회장의 목소리가 굵어졌다 그는 "이 청마 시비는 부산 문학비의 전형과 같다"고 강조하는 중이다. 햇살 따사롭던 지난 28일, 또따또가 내 문화공간 '수이재'와 동아대가 공동으로 마련한 '부산의 문화비 탐방' 행사. '사회적 합의에 의해 모범적으로 조성된 문화비를 탐방하고 문화비 건립의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한다'는 게 탐방의 취지다. 부산 시민들과 문인·예술인 40여 명은 이날 오전부터 수정가로공원을 출발해 에덴공원, 강서 강변도로, 금강공원, 범어사 일주도로 등 부산의 주요 문화비들이 깃든 곳을 일일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에덴공원의 청마 시비는 1967년 예기치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청마를 기려 많은 문인과 시민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74년 세운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예술인들의 문학적 그리움이 한 틈 빠짐없이 다 들어 있다는 것. 글씨 역시 향파 이주홍 선생의 솜씨다. 수이재 대표 최원준 시인의 설명은 이어진다. "시비 뒷면을 보세요. 청마의 간단한 이력과 '청마를 기리는 사람들'이라는 건립 주체의 간결한 언급 말고는 아무 것도 없지요." 건립 대상보다는 건립 주체를 내세우는 최근의 시비들이 크게 깨우쳐야 할 부분이며, 시비란 무릇 이래야 하지 않을까라는 얘기다. 인근에 서 있는 오태균 음악비 역시 마찬가지다. 부산 교향악 운동의 선구자인 오태균 선생을 기려 후학들이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곡이 오태균 선생을 음악의 길로 이끌었다고 김창욱 음악평론가는 설명했다) 첫 마디만 단출하게 새겨 세운 것인데, 음악 관련 빗돌로서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 단아하고 소박하게 예술정신 기려
강서 강변도로로 부신 가을 햇살이 떨어졌다. 거기에는 7개의 문화비가 수백m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생명의 시원인 강, 민족의 젖줄인 낙동강에 문화비들이 서 있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남다른 문학적 성취를 남긴 예술인 조지훈 박목월 이은상 금수현의 비를 둘러봤다.
강 자락을 뒤로 하고 일행들이 도착한 곳은 동래 금강공원이었다. 도심의 혼돈이 느껴지지 않는 안온한 느낌이 마치 딴 세상 같다. 거기서 4개의 문화비를 만났다. 부산 문학의 터를 닦은 향파 이주홍 선생의 시비가 벙긋 피어난 꽃무릇(석산화)을 벗 삼고 있었고, 독보적인 개성으로 사진예술을 빛냈던 독보 허종배의 사진비, 아동문학의 큰 봉우리 최계락의 시비, 현대시조의 절창 이영도의 시비들이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금정산 문화의 거리'라 명명된 범어사 일주도로에서도 김정한 문학비, 이주홍 시비, 김종식 그림비 같은 문화비를 차례로 감상했다.
· 사회적 합의로 세우는 공공 자산
일행들은 작고 예술가들의 문화비를 둘러보는 사이 예인들의 삶과 거기서 꽃핀 예향에 취했다. 입에서는 시가,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7시간을 꼬박 바친 문화비 탐방에도 고단한 기색은커녕 한 치 흔들림 없는 눈빛들.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조해훈 시인은 "감동을 주는 문화비란 곧 뛰어난 예술세계를 엄정한 사회적 합의로 인정받은 공공의 문화자산"이라고 했다.
그러니 문화비 건립의 바람직한 기준은 저절로 드러난다. 평단이 두루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의 것이어야 한다는 점, 장소성(性)과 비석과 시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소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의태 시인은 "개인의 명예를 위한 빗돌이나 사회적 논란이 있는 비석, 혹은 건립주체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경우는 지양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탐방 결과 비석 글자에 오자가 있거나 탈색한 것이 더러 눈에 띄었고, 비석의 기단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아쉬운 비석들도 있었다. 차재근 또따또가 대표는 "향후 부산의 소중한 문화비들을 청결하게 하는 작업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탐방에는 박옥위 윤상운 문진우 김호철 김진문 방영식 김해경 이현주 나여경 박이훈 김명화 정훈 등의 문화예술인이 시민들과 동참했다.
김건수 기자 kswoo333@busan.com
부산의 문화비(碑) 돌아보니 19면
길이 문화적 사표로 남는 것이 바로 문화비다. 시비 그림비 음악비 사진비….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부산의 예술인과 시민들이 부산의 주요 문화비를 탐방해보니 대부분 평단이 두루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을 후학이나 시민들이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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