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가 무엇일까? 정치적·사회적 이유도 있고, 종교적·미학적 이유도 있다. 특히 화려한 테크닉과 현란한 연주력으로 청중을 압도하고, 그들에게 출렁이는 음악적 감동을 선사하는 일도 실로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녕 복되고 복된 일은 소외되고 상처 입은 이들에게 음악으로써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데 있지 않을까?
음악으로써 위로와 격려를 (잘) 전하려면, 제일 먼저 그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소통과 공감의 방법을 모르면서 위로와 격려를 행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이 분야 전문가의 자문과 지도를 구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귀인(貴人)이 나타나셨다. 원불교 부산교구 사무국에서 일하시는 박화영 교무님이다.
짜장콘서트 무대에 출연한 테너 방주원 님도 음악치료 관련 자격증이 있다고 한다. 잘 찾아보면, 주위에 남다른 능력자가 없지 않다.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뿐만 아니라 문화소외계층(혹은, 지역)의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춰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2020. 5. 13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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