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공연계의 스테디셀러
글_이혜영 음악칼럼니스트
솔리스트 앙상블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남성 솔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여 매해 연속성을 가지고 공연을 올리는 부산에서 잘 알려진 단체이다. ‘솔리스트’ 즉 ‘독주가(獨奏家)’는 단독으로 무대를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음악가를 뜻한다. 그런 솔리스트 70명이 모여서 앙상블을 만들었다면 관객들은 어떤 기대로 극장을 찾을까.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들이 남성합창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는 대체로 비슷할 것이다.
올해의 ‘솔리스트 앙상블’ 공연에는 조금 더 새로운 공연을 올리고자 했던 고민의 흔적들이 보였던 것 같다. 투 피아노(Two Piano)의 반주로 오케스트라와는 또 다른 맛의 풍성한 반주를 감상할 수 있었던 점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솔로와 내레이션이 결합한 박창민 작곡 강문숙 작시의 창작 연가곡 ‘독도의 사계’, 사지가 잘린 채 입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산낙지의 애처로운 시점을 웅장한 남성 성악가의 목소리로 듣자니 객석 여기저기 웃음이 터져 나왔던 김준범 작(作) ‘산낙지를 위하여’, 솔리스트 앙상블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던 꼭 맞는 옷 ‘막걸리송’까지 재미와 감동 그리고 예술성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고 싶은 욕심이 엿보이는 과감한 선곡들도 특히 눈에 띄었다.
그리고 소프라노 신정순 님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들려준 ‘동심초’와 오페라 루살카의 ‘달에 노래‘(Píseň Rusalky: Ó Měsíčku)는 남성 성악가들의 공연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했다. 이외에도 특별출연의 순서로 부산 지역 음대생의 무대는 훌륭하고 의미가 있었지만 공연 러닝타임이 두 시간을 훌쩍 남겼던 점을 고려하면 부산 공연계의 떠오르는 신예를 소개하는 것은 그러한 취지를 갖고 기획되는 다른 공연에 양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여러 가지 많은 새로운 요소들을 선보이려고 하다 보니 공연이 다채로워진 것은 분명하지만 남성 성악가 70인이 들려주는 관객을 압도하는 그들만의 소리와 무대가 조금 아쉬워질 때 즈음 공연이 끝이 났다.
이어진 두 앙코르곡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을 부르는 솔리스트 앙상블의 모습과 이에 호응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쉬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곡의 풍성함은 관객들을 압도했고 대중적인 곡이 주는 힘이 더해져서 공연장 전체가 활기를 띠고 들썩였다. 남성 솔리스트 70명의 공연에 관객들이 어떤 것을 기대하고 오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번 솔리스트 앙상블 공연은 부산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제작한 공연이다. 그 후원의 취지와 의의는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기초공연예술행사의 지원을 통해 우수한 공연예술의 발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부산의 공연예술 기반 구축과 부산 시민의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솔리스트 앙상블’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추었다고 생각하고 기대에 부응하는 공연을 선보였다고 생각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선후배 간의 돈독한 정의 따뜻함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유감없이 보여준 ‘솔리스트 앙상블’에 우선 박수를 보낸다.
제작자들이 비용 걱정 없이 공연을 만들고 모든 음악가가 음악 활동만으로 온전히 가족의 생계를 넉넉하게 책임질 수 있는 세상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메세나(Mecenat) 즉 기업의 문화 예술 활동 지원 사업이나 관의 지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공연계의 현실은 비단 ‘솔리스트 앙상블’만의 문제가 아니다. 안타깝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서울과 지방 모두 직면하는 예술 공연계 전반의 문제이다. 그러나 ‘솔리스트 앙상블’은 그러한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그 열쇠는 바로 수년간 공연장을 찾을 때마다 여느 클래식 공연들보다 확연하게 다른 객석 점유율. 바로 ‘관객’이다.
물론, 그들이 모두 순수한 유료 관객이라고 확언할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 대다수의 표가 정가대로 팔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도 조심스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가시적인 관객 수, 즉 ‘티켓 파워’는 부정할 수 없는 ‘솔리스트 앙상블’의 저력이다. 따라서 부족한 지원금으로 인한 출연자들의 처우를 개선해 보려는 자구책으로써 공연 티켓 판매 수익 중 일정액을 사용하는 관행에 대하여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티켓 판매 수익금은 메세나(Mecenat)나 관의 지원금보다 훨씬 공연의 안정성 확보에 기여도가 크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은 공연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되 티켓의 판매나 수익의 규모와 별개로 보장된 출연료를 균등하게 받고 티켓 판매 수익은 출연자의 처우개선, 단체의 운영, 다음 공연을 위한 재투자 등 다양한 목적과 용도로 쓰여질 수 있는 귀중한 재원으로 사용하면 된다.
이렇게 했을 때, 당장 출연자 개인의 인맥을 통해서 판매되는 수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들것이다. 하지만, 일반 유료 관객들이 일 년에 한 번 연말 ‘솔리스트 앙상블’의 공연을 믿고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반복되는 제작비 부족과 출연자 처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좀 더 장기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루트와 의도를 통해서 광고를 접했든 이미 부산에서 ‘솔리스트 앙상블’은 연말에 변함없이 찾아오는 남성 성악가들의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하모니로 그 명성을 확고히 하였기 때문이다.
부산의 합창인구 규모는 시립합창단과 직업합창단 및 아마추어 합창단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가 매우 크다. ‘솔리스트 앙상블’이 부산 합창의 저변을 더욱 확대하고 나아가 남성합창 창작 작품 발굴에도 기여(寄與)하며 새로운 합창 레퍼토리 제시의 모델로 설 수 있기를 바란다.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난 극작과 전문 연출을 통해서 마치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공연을 선보일 수 있다면 부산의 공연계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남성합창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새해 23년 말의 ‘솔리스트 앙상블’의 공연을 또다시 기대하며 변함없이 공연장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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