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농산물도매시장에서 9일 간에 걸쳐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 바 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매일 00시 30분부터 07시 00까지였다. 경매에서 낙찰된 각종 농산물(채소)을 중도매인 가게로 옮기거나, 이를 소포장해서 배달하는 일이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으나, 늘상 물건들을 싣거나 옮기거나 내리는 작업은 손목과 팔목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고, 그 짧은 일정에 무려 네 번 씩이나 정형외과를 찾았다(병명은 양측 수관절부 윤활막염). 이러다 곧 죽을 것 같아 마침내 중도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무척 잘한 일이다.
그런데 이 무렵 시장의 지하 냉동창고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트 벽면은 온갖 욕설과 절규, 분노와 적개심이 가득한 낙서로 도배되어 있었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으나, 낙서에 새겨진 그들의 삶은 실로 고통의 바다였다. "시발 진짜 지옥이다", "다 죽인다 그래", "야이~ 호로돌×아~", "졸라 부리쳐 묵는다", "씨발×이 뒤질", " 문 좀 닫아라고 씨발 것들아", "정말 짜다", "돌격 앞으로", "Fuck yo(Fuck You)", "목구녕에 ××" 따위가 그러하다. 때때로 "울 엄마"를 그리워 하거나, "군대 여자 날 떠나고 볼 수 없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네가 싫어서 그거여"와 같이 연인과의 이별에 대한 넋두리도 없지 않았다.
그들은 어쩌면 손목과 팔목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겨도, 치료하기 위해 정형외과를 찾더라도, 그 일을 싫어할 수 있으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어쩌다 막다른 골목에 우두커니 혼자 남겨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삶은 지락(至樂)이 아니라 고해(苦海)임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