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어린이날은 모처럼 해맑은 일기(日氣)였다. 그 흔하던 비도 내리지 않고, 황사도 끼지 않았다. 따스한 햇볕이 알맞게 내리 쬐었고, 적당히 산들바람도 불어왔다. 하늘은 또 얼마나 높고 푸르렀던가! 비로소 봄다운 봄을 맞은 것이다.
때마침 낙동강 하구둑 광장에서는 ‘을숙도 어린이 한마당’이 벌어졌다. 여기에는 전래놀이 마당, 과학놀이 마당, 성교육체험 마당, 유아 마당, 119 소방체험 마당, 공연 마당과 같은 무료체험 마당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광장은 온통 형형색색의 인파로 북적였고, 대형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같은 노랫소리에 연신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뒤늦게 배운 한글로 써내려간 艱難辛苦한 삶의 기록
그런데 북적거리는 부스 가운데 유독 한 곳의 분위기가 썰렁했다. 들어가 보니 ‘일기’(日記)라는 제목으로 여러 편의 글이 간이액자에 끼워져 걸려 있었다. 모두 부산희망나눔이 운영하는 사하평생교육원 한글교실에서 배운 어르신 학생들의 작품이었다.
임막점 할머니(2학년, 62세)는 ‘2010년 11월12일 금요일, 오후에는 우리집 도배를 하고 저녁에는 남편과 외식으로 돼지국밥을 먹었습니다. 2010년 11월18일 목요일,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2010년 11월22일 월요일, 몸살이 나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왔습니다.’ 라 썼다.
김순자 할머니(2학년, 72세)는 ‘2010년 11월29일 날씨 맑음. 나는 오늘 메주를 끓여 놓고 시장에 가서 칼국수를 먹었다. 나와서 유자를 샀다. 집에 와서 유자차를 끓여 먹었다. 다하고 나서 한숨 잤다.’ 라며, 일상 속의 소소한 일들을 솔직담백하게 쓰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정자 할머니(3학년, 69세)는 ‘나는 1985년도 허리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 당시 형편이 너무나 어려웠다. 아이들도 어리고 남편은 하늘나라로 가고 형제들에게도 돈을 빌릴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사정을 듣고 본인도 어려운데 선뜻 오십만 원을 빌려 주었다. 그래서 수술도 잘 받았다. 고마운 친구들이 많지만 그 중 생각해 보니 어려운 시절에 도와 준 그 친구가 가장 생각이 난다.’ 며 고마운 영순이를 추억했다.
또 다른 할머니(4학년, 69세)는 ‘3남1녀의 어미로서 아이들을 키우려면 내가 나서야 했다. 그때는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있어도 직장생활을 하지 않은 때라 내가 돈벌이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작정 다라이를 들고 친구와 같이 시장을 나섰다. 하루 종일 점심도 먹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저녁이면 힘든 몸을 끌고 집에 돌아왔다 … 그리하다 보니 내 청춘도 저만큼 다 갔다.’ 라며, 지난 시절 고단한 삶의 회한을 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강분향 할머니(4학년)는 ‘예전에는 글을 몰라 내일 은행 갈 일이 있으면 전날부터 내 가슴이 두근두근 했습니다. 그날은 꿈속에서도 헤맸습니다.’ 같이 까막눈의 설움이 오롯이 묻어나는 글을 썼다. 그 밖에 순천만의 갈대밭, 낙안읍성의 초가집, 송광사의 절구경과 단풍놀이 등 가을소풍의 즐거움을 담은 글도 없지 않았다.
지난 시대 숨겨진 주역…‘복지국가 건설’ 도대체 언제
비록 초등학생의 일기만큼이나 정교하지 못하지만, 이 글은 쓴 할머니들은 30-40년 전만 해도 이른바 ‘산업의 역군’으로 불린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의 양육, 갖가지 집안 대소사에 무한책임을 졌던 분이 아니었던가. 그들의 거친 손길이 아니었던들 오늘, 우리는 이만큼의 행복조차 누릴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마땅히 그들은 한 시대의 ‘숨겨진’ 주역(主役)이라 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 세계 1위’, ‘노인 10만명 당 자살자 수 OECD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노인 자살원인의 34%가 경제적인 문제로 나타났다.
공화국이 바뀔 때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왔던 ‘복지국가 건설’. 언제까지 복지국가는 건설만 할 것인가.
/김창욱(kcw66@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