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수 년 전부터 ‘엘 시스테마’(El Sistema)가 화제다. 이미 책과 다큐멘터리로 소개되었으니, 아마 그 존재를 모르는 이가 없을 줄 안다. 한 마디로 빈민가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나눠 주고, 악기연주법을 가르치며, 이들을 가난과 폭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베네수엘라의 기적적(奇蹟的) 오케스트라 시스템을 가리킨다.
1975년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허름한 차고에서 11명으로 시작한 엘 시스테마는 현재 184개 센터에 단원이 무려 26만 5천여 명에 이른다. 무엇보다 그것은 음악을 통해서 공동체의 배려와 협력, 우리 시대 무뎌진 상생(相生)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사하구에도 지난해 ‘우리가 만드는 오케스트라’ 창단·공연
한국에서 엘 시스테마를 벤치마킹한 것은 지난 2010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교육사업’이 그것이다. 전국적으로 공모한 이 사업에는 부산을 비롯, 인천·대전·춘천·목포·부천·화성·익산 등 전국 8개 지역이 선정되었다.
부산에서는 ‘우리가 만드는 오케스트라’(이하, 우리 오케스트라)라는 타이틀로 부산문화재단·을숙도문화회관·인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공동으로 해당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문화재단의 행정지원과 문화회관의 시설지원 아래,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 및 운영은 인코리안심포니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구조이다. 특히 프로그램의 효율성 문제, 강사 수급문제, 아동․청소년 단원 확보와 교육 만족도 문제 등 인코리안심포니가 맡은 제반 임무는 실로 막중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지난 해 10월 걸음마의 걱정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소득 소외계층 가정의 자녀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창단되었고, 비록 서툰 솜씨지만 3개월 후에는 첫 공연을 갖기도 했다. 2년차인 올해 12월에도 63명으로 구성된 ‘우리 오케스트라’의 교육성과를 무대에 펼칠 예정이다.
그러나 ‘우리 오케스트라’의 최종 목표가 이들 아동․청소년들의 연주력 향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애당초 벤치마킹한 엘 시스테마의 정신이 배려와 협력이자 그것이 ‘우리 오케스트라’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7월 ‘우리 오케스트라’ 공개수업 직전에 지적되었듯이 해당 사업은 5월부터 12월까지 8개월 동안만 이루어진다. 연중 약 4개월간의 공백이 생기는 셈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터무니없는 예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3년차인 내년에는 예산의 현실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 오케스트라’ 사업이 내년에 최종 만료된다는 사실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교육사업’ 기간이 최장 3년으로 종료되는 까닭이다.
내년 사업 만료…지속될 수 있게 관련 기관·단체 적극 나서야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우리 오케스트라’의 운명이 어찌 될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저소득 소외계층 자녀들이 모처럼 얻었던 기회들, 즉 오케스트라 악기체험 교육의 기회, 음악예술에 대한 인식과 이해 증진의 기회, 사회에 대한 재능 기부의 기회, 나아가 공동체의 배려와 협력 교육의 기회 등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부산문화재단·을숙도문화회관·인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상호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서 ‘우리 오케스트라’가 지속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이들의 굳건한 신념과 그 실천에 부산판 엘 시스테마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정녕 과언이 아니다.
/김창욱 (http://blog.daum.net/kcw660924/)
· 음악평론가. 부산음악협회 부회장. 한국예술문화비평가협회 사무국장.
· 부산음악협회 제29회 부산음악상 수상(2004).
· 저서 ‘음악의 이해’(공저), ‘부산음악의 지평’, ‘나는 이렇게 들었다’, ‘홍난파 음악연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