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시의 지역 불균형 현상이 두드러졌다. 부산시가 주최한 ‘부산지역 균형발전 전략수립 세미나’(2005. 8. 30 부산시청)에서 부산발전연구원 김경수 연구위원이 발표한 ‘부산의 지역균형발전 현황과 과제’라는 발제문이 그같은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동부산권 주민의 경우 절반 이상이 거주지역에 대해 ‘살기 좋다’고 여긴 반면, 서부산권 주민은 10명 중 2명 정도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등 지역 불균형에 대한 시민 만족도의 편차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을숙도 들어설 제2시립미술관, 짓고보자식 공사는 곤란
특히 동부산권(동래․금정․해운대․기장) 주민의 50.9%, 중부산권(중․동․서․영도․부산진․연제․남․수영) 주민의 35.9%에 비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서부산권(북․강서․사상․사하) 주민의 거주지 만족도는 불과 22.9%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전략으로 기반시설 및 기초생활서비스시설의 균형적 확충, 형평성 있는 교육환경 조성, 낙후지역 도시정비사업 우선 지원 등이 모색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부산시는 부산비엔날레 전시 등을 위해 하단동 을숙도문화회관 옆에 총 사업비 410억 원을 들여 연면적 1만5천620㎡(지하 1층, 지상 4층 예상) 규모의 가칭 제2시립미술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지난 9월 부산도시공사와 사업기본협약을 체결했으며, 부산도시공사는 이미 턴키(turn key)방식의 공사 입찰공고를 냈다. 내년 2월 설계 적격자 선정을 거쳐, 늦어도 7월에는 시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마치 천리마운동과 같은 속도전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문제는 부산시와 부산도시공사가 예술창작촌, 비엔날레 홍보관, 다목적 전시실을 미술관에 들인다는 기본계획만 세웠을 뿐 미술관의 정식 명칭이나 성격, 운영방안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전혀 수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410억 원이라는 혈세를 투입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우선 건물부터 짓고 보자는 식이다.
더구나 문화시설 건립에 턴키방식을 적용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형 토목공사에 주로 채택되는 턴키방식은 시행업체가 설계와 시공을 일괄 수주하고 공사를 마치면 발주처에게 열쇠를 되돌려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럴 경우 지역업체의 참여나 주민의 여론이 원천적으로 봉쇄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사후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시행업체에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따라서 시립미술관 건립의 속도를 현저히 늦추어야 한다. 대신에 왜 시립미술관인지, 무엇을 담을 것인지, 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폭넓은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히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사하지역 문화계 전문가와 지역주민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이들이 해당 지역의 문화를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부산시는 ‘전시행정’, ‘졸속건립’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건립 앞서 지역민 의견 반영하는 논의의 場부터 마련돼야
올해 부산시는 국민인권위원회의 청렴도 평가에서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특히 관급공사의 설계를 포함한 공사관리와 감독(전국 14위), 건축과 도시계획 심의(전국 15위) 등 주로 이권과 관련된 분야에서 밑바닥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문화는 문화적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막무가내식, 묻지마식 토건행정으로 문화를 바라보는 것은 애당초 쓰레기더미에서 꽃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김창욱 (http://blog.daum.net/kcw660924/)
· 음악평론가. 부산음악협회 부회장. 한국예술문화비평가협회 이사.
· 부산음악협회 제29회 부산음악상 수상(2004).
· 저서 ‘음악의 이해’(공저), ‘부산음악의 지평’, ‘나는 이렇게 들었다’, ‘홍난파 음악연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