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4. 11(4)
지상중계 부산오페라하우스 시민토론회 이대로 가단 수천억 건물만 남아… '오세훈 실패'(한강예술섬) 따라갈 테냐
사회 김현정(부산민예총 정책위원장)
발제 이승욱(안녕광안리 대표), 이원재(문화연대 사무처장)
토론 김창욱(음악평론가), 정희준(동아대 교수)
4월10일 오후 3시 부산일보 소강당
발제 1 이승욱 안녕광안리 대표
문화적 랜드마크는 건축물 자체가 아니라 명확한 비전을 갖고, 운영의 토대가 되는 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가능하다. 문화예술계와 시민들 사이에 공감대를 얻어야 함은 물론이다. 계획과 동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전형적인 전시행정의 낭비와 과오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운영예산을 줄이기 위해 상주단체 없이 오페라하우스를 운영한다면 프로그램의 내실화를 꾀하기 어렵고, 대관 위주로 시설을 운영하면서 표 한 장에 수십 만 원 하는 상업적 공연에 몰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반면 상주단체가 있으면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다.
전시행정 넘어서려면
공연장 운영 비전과
시민 동의가 우선
상주단체가 있는 호주 시드니오페라하우스와 대관 위주 기획공연을 하는 싱가폴 에스플러네이드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2011년 연간보고서를 보면 시드니오페라하우스는 상주단체 운영예산을 제외한 전체 시설 운영 지출의 38%에 해당하는 530억 원을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4개 상주단체 중 국립오페라단에만 280억 원을 국비로 지원하고 있다. 연간 700억 원의 사업예산을 지출하는 에스플러네이드는 이 중 정부가 3분의 2 이상인 430억 원을 지원한다. 부산시가 75% 재정자립도에 32억 원 지원만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국비 2천억 원을 들여 부산시민공원 내에 동남권 거점 국립 문화시설로 건립을 추진 중인 국립아트센터와의 중복문제도 걸린다. 국비예산 부담 급증과 시설 중복 지적을 피할 수 있을까? 결국 이대로라면 부산오페라하우스는 건물만 있고 내용은 없는 수천억 원대 설치예술 구조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적절한 규모와 충실한 계획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나 야외공연장을 추진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활용도나 파급효과도 높을 것이다.
발제 2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
이명박·오세훈 전임 서울시장 시절 무리하게 추진하다 장기 유보된 한강예술섬 사업과 부산오페라하우스 사업은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부산시의 논리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기존 공연시설 활용도가 낮다'는 주장은 대규모 공연장 건립의 근거가 아니라 기존 공연장 활성화의 논리로 동원되어야 한다. 또 최근 1~2년 사이 지어졌거나 3~4년 내 건립될 대형 공연장은 공연시설에 포함시키지 않은 채 공연시설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편다. 오페라하우스 건립 당위성 근거를 내세우려다 보니 전문 오페라 공연장 필요성을 강조하고,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하려다 보니 대규모 복합공연장이라는 점을 내세워야 하는 모순에 빠지기도 했다. 그만큼 오페라하우스의 필요성이 미약하다는 반증 아닐까? 오페라 활성화 정책을 편다 하더라도 대규모 공연장이 아니라 오페라 현장 예술가와 기획자에 지속적·적극적으로 투자해 공연콘텐츠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
건립 타당성만 강조
부산시 논리 모순
왜 필요한지 재검토를
오페라하우스가 항구도시에 유리하다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그렇다면 항만에 국제공항과 수도권 배후 관객층을 낀 인천이 가장 적합한 것 아닌가? 여러 장르가 어우러지는 오페라의 장점을 내세우지만 통섭적이기보다는 전통적인 복합장르일 뿐이다. 도시재생과 연결 지어 설명하려면 지역 정체성을 가진 시민들이 시설 활용에 참여하도록 조직하고, 다양한 자원들이 관계를 복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선이다.
부산시의 사업 추진은 문화정책 패러다임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고, 공연산업 육성계획을 이제서야 수립하는 앞뒤가 바뀐 정책집행을 보여 준다. 민·관·학 협의체의 거버넌스도 '건립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건립 필요성과 타당성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해외 유명 공연장, 건물 멋있다고 이름난 건 아닌데…
약 1시간 10여 분 동안 발제자 2명이 발언을 한 뒤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자들도 부산오페라하우스 건립의 당위성과 근거가 부족한 점을 잇따라 지적했고, 방청석 질문 이후에는 오페라하우스를 중단할 경우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토론자 및 방청객들
외형 집착 태도 우려
야외공연장 전환 등
새로운 대안 제시 눈길
■ 토론자 발언
첫 토론자인 음악평론가 김창욱 박사는 "단순히 '부산에 있는' 오페라하우스가 아닌 '부산의' 오페라하우스가 되어야 하는데 부산시는 오직 외부를 향한 보여 주기에 여념이 없다"고 꼬집었다. 부산시가 전범으로 내세우는 해외 공연장들에 대해서도 "지역 예술상주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을 이끌어냄으로써 종합예술센터의 기능을 충실히 하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인데 겉모양만 좇는 것 아닌지 걱정"이라고 김 박사는 지적했다. 상주단체나 음향·조명 등 무대장치와 같은 매우 다양한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데 이런 점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김 박사는 "지역과 밀착된 공연장, 지역민의 삶과 예술을 총체적으로 담는 결정체로서의 공연장이 되려면 지역 예술단체나 예술가와 처음부터 함께 준비해 가야 하는데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음 토론자로 나선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정희준 문화사회위원장은 지자체가 대형 건축물 건립사업에 매달리는 이유를 두 가지로 꼽았다. '내 돈'이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인데 숫자로만 생각하니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고, 대형 건축물을 치적으로 남기고 싶어 세계적인 규모에 집착하는 콤플렉스 때문이라는 것이 정 위원장의 분석이다. 그는 "해외에선 건립 여부만 놓고도 100~200번씩 토론을 하는데 부산시는 얼마나 공론장을 제공했는가"라며 "민·관·학협의체라면서도 시민단체 추천은 2명뿐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또 연간 18만 명 관람객 추산을 내세운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의 기본계획에 대해서도 허구성을 지적했다. 매달 1만5천, 매주 4천 명가량의 관람객을 유치한다는 게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대안은 어떻게?
지정 토론자 발언 이후 대화 주제는 대안 마련으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대중음악평론가 김형찬 씨가 방청석에서 "북항 재개발에 문화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은 좋지만 당장 오페라하우스가 아닌 대안을 만드는 것이 시급한 것 같다"고 말한 게 계기가 됐다.
우선 부산시가 케이팝 공연을 유치할 수도 있다고 설명하는 데 대해 이승욱 대표와 이원재 처장은 시장논리 상 성립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몇 만 명씩은 되어야 수지를 맞출 수 있는 유명가수들에게 2천 석도 안 되는 공연장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으며, 국내 3대 기획사도 전혀 전용관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공통적으로 나온 대안은 롯데그룹의 기부금을 오페라 예술재단(정 위원장)이나 북항문화예술재단(이 대표) 등의 형태로 기금화하는 방안이었다. 이 처장은 "폼나게 쓰고 싶은 기업의 욕망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오페라를 사랑한다면 그 예술인들과 콘텐츠 생산에 투자하는 것이 더 빛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 롯데의 기부금 규모 범위 내에서 짜임새 있는 복합공연장을 짓는 방안과 부산지역에는 거의 없는 야외공연장 건립을 이 대표가 제안했고, 정 위원장은 예산 걱정할 필요 없이 롯데가 건립기부하도록 원상회복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롯데기부금과 북항재개발, 부산오페라하우스을 전혀 다른 3개의 트랙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아이템을 묶으려는 정치적·경제적 욕망이 작용하면 사업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기부금으로 별도 재단을 만들고, 북항도 항만이라는 개방적 공간인 만큼 예술인들이 마음대로 와서 놀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역사적 스토리텔링이나 관계성과도 부합하는 것 아닌가 한다"며 "오페라하우스는 타당성 검토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문화생태계와 행정이 혁신적인 거버넌스를 만들어 갈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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