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흘레 붙는 개를 보며

浩溪 金昌旭 2013. 8. 12. 15:09

 

오늘은 삼복 중 말복. 개나 닭이 생각나는 복날이다. 수 년 전, 아래 글을 어느 신문사에 보냈다. 그러나 퇴짜를 맞았다. 너무 음탕한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오늘 대저 본가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의 작렬하는 태양은 그때와 같았으나, 어디에도 그때 그 개는 보이지 않았다. 2013. 8. 12 악문방주

 

 

대저(大渚) 본가에 다녀오던 벌건 백주대낮, 시골길 노상에서 흘레 붙는 한 쌍의 개를 만났다. 고양이만한 흰둥이 밑에 송아지만한 누렁이가 깔린 채 농염(濃艶)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코 끝까지 진주(進駐)한 자동차 앞에서도 그들은 막무가내, 오직 자기네 사랑놀음에만 탐닉하고 있었다. 작열하는 붉은 태양 아래 이따금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하는 수 없이 나는 몰던 차를 멈추었다. 그리고 경적(警笛)을 꾹꾹 눌러댔다. 그제서야 그들은 부스스한 몰골로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고양이만한 흰둥이는 혓바닥으로 연신 자기 입술을 낼름낼름 훔쳐댔다. 눈꼽이 낀 채 쩝쩝 입맛을 다시는 녀석의 모습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들의 열락(悅樂)을 한순간에 빼앗은 나는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녀석도 내게 최소한의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필 왜 내가 건너 가려는 그 길 한 가운데서, 그것도 후끈후끈 30도를 오르내리는 땡볕 아래서, 왜 하필 말초신경(末梢神經)이 유독 예민한 내 앞에서인가? 비록 낯선 국외자(局外者)의 침탈로 자신의 원초적 본능을 거세당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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