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02 | 21면
[예술인칼럼 '판']
예술가의 발언이 필요한 때
김창욱 음악평론가
시인은 시를, 정치가는 정치를, 경제인은 경제를, 근로자는 노동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이 오로지 자신의 직분에만 충실한다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가 남을 뿐이다. 김광규 시인의 말이다. 마찬가지로, 예술가가 오로지 예술만을 생각한다면 세상이 온통 무지갯빛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실은 굴욕과 궁핍과 고통이 남을 뿐이다. 예술과 정치, 예술과 경제,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래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내가 사는 부산, 그리고 내가 관계하는 문화계도 시끄럽기는 매한가지다. 근래 가장 시끄러운 쪽은 역시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선정 문제일 듯싶다. 심사에서 1순위를 차지한 전시기획자 김성연 씨를 제치고, 2위의 프랑스인 올리비에 캐플랑 씨가 전시감독으로 최종 선임된 사실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정 원칙과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결정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저지른 인사는 얼마 전 비엔날레 운영위원장으로 임명된 오광수 씨다.
오광수, 그가 누구던가? 단지 부산 출신이라는 사실 이외에, 부산에 대한 문화적 기여도가 전혀 없이 지역에서 한자리를 꿰찬 인사 아니던가? 이번 사태는 부산시가 첫 단추를 잘못 꿰는 바람에 부산을 일궈 가는 많은 지역미술인들을 절망에 빠뜨렸고, 마침내 지역문화 생태계마저 파괴시켰다. 결과적으로 부산시의 뿌리 깊은 관료주의적 밀실인사로 얼룩진 문화적 참사(慘事)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수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역문화계에서 '부산문화연대'라는 조직이 탄생했다. 25개의 지역문화예술단체가 모인 문화연대는 부산의 문화권력을 감시·견제하는 결사체다. 벌써부터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인선 문제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열고, '부산 문화판,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문화연대는 비민주적인 부산시 문화행정에 대해 지역문화계 인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할 작정이다.
예술가는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다. 이슬만 먹고 사는 존재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예술가도 현실에 마냥 침묵해서 안 된다. 침묵을 깨고, 마침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작은 물방울이 모이고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김창욱 음악평론가 음악학박사로 부산음악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여러 곳에 출강하고 있다. 평론집 '부산음악의 지평' '나는 이렇게 들었다' '청중의 발견' 등을 썼고 학술서로 '홍난파 음악연구'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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