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음악의 궁극(窮極)

浩溪 金昌旭 2017. 8. 28. 07:37


[아침향기]  음악의 궁극(窮極)

부산일보2017. 8. 28 (31)   


김창욱  악평론가·부산시의회 정책연구위원

 

2014814,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한국은 남북의 군사적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고, 그 해 4월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충격의 도가니 속에 빠져 있을 때였다.

 

그는 강론에서 겸손과 청빈, 대중과의 적극적 소통, 그리고 공동체 정신과 관용을 이야기했다. 특히 그는 인간의 가치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막대한 부요(富饒)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 안에 살고 있다", "우리 가운데 있는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터민 자녀 오케스트라 참가 음악가들

낮고 작은 곳 비추는 예술 본연의 모습

재정 악화로 해체하자는 의견 있었지만

초롱 같은 아이들 눈빛에 힘든 길 지속

 

교황은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 궁핍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용산 참사 유족,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강정마을과 밀양 주민들, 세월호 희생자들. 교황이 그들의 손을 덥석 잡아준 것은 바로 위로와 격려를 위해서였다.

 

그 무렵 나는 음악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가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물론 음악의 존재 이유는 많다. 정치적·사회적 이유, 종교적·미학적 이유도 있다. 특히 화려한 테크닉과 현란한 연주력으로 청중을 압도하고, 그들에게 출렁이는 음악적 감동을 선사하는 일은 정녕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참으로 복되고 복된 일은 소외되고 상처 입은 이들에게 음악으로써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데 있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그 같은 일을 실천하는 음악인이 없지 않다.

 

클라리넷의 홍병희 씨를 비롯해서 바이올린의 김민주·동경화·김상희·박효정, 플루트의 정애라 같은 연주자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새터민과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케스트라에서 지휘, 혹은 악기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새터민 A양은 엄마 품에 안겨 압록강을 건넜다.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던 동토의 2월 어느 날 밤, 강보의 핏덩이를 껴안은 엄마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강을 건넌 것이다. 자칫 경비병에게 발각되는 날에는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다. 아이가 깨어나 울라치면 엄마는 핏덩이를 때리고 또 때렸다. 아이가 몇 차례 기절한 연후에야 모녀는 겨우 중국땅에 닿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새터민 B양도 어렵사리 부산에 정착했다. 하지만 아이는 새아버지의 계속되는 술주정과 폭언·폭력에 시달렸고, 가정은 갈수록 곤궁하고 피폐해져 갔다.

 

아이들은 학교생활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친구들의 따돌림과 냉대에 기가 눌려 마음은 늘 불편하고 불안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에 들어오면서부터 말 없던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악기를 다루는 재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과 자신감, 게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는 동병상련의 정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오케스트라는 적잖은 무대에 섰다. 요양병원과 장애인 위안공연을 비롯해서 국제한상대회, 부산마루국제음악제, 국회 연주회 등 제법 큰 무대에도 올랐다. 이제 그들은 장난질을 할 만큼 학교생활도 여유로워졌다.

 

그러던 사이, 7년 동안 이어오던 오케스트라 지원금이 끊기면서 상황이 많이 변했다. 연습실 사용료, 악기 수리비, 단원 간식비, 인건비를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를 해체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초롱 같은 아이들의 눈빛을 볼라치면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지휘자와 악기 지도자들은 오히려 십시일반 돈을 냈고, 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지속하기로 했다.

 

궁극적으로 음악이란, 고통받는 이웃을 위로하고 격려함으로써 마침내 행복을 이끌어 내는 수단이 아닐까. 음악이 낮고 작은 곳에 자리할 때 그것은 우리 곁에서 언제나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문화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냥' 살기  (0) 2017.11.06
음악의 날개  (0) 2017.10.02
「윤흥신」 관람후기  (0) 2017.07.25
음치가 생기는 이유  (0) 2017.07.24
부산의 음악비  (0) 2017.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