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의 기억, 전쟁에서 꽃핀 문화] 3. 피란수도 부산 유네스코 등재 ② 전문가 좌담회
"문화콘텐츠 발굴·보존하는 컨트롤 타워 절실"
『부산일보』 2017. 09. 28 (25)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 지난 19일 오후 부산일보 4층 회의실에서 '1000일의 기억-전쟁에서 꽃핀 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는 전문가 좌담회가 열렸다. 정종회 기자 jjh@
피란수도 부산의 무형 유산을 되짚어보고 보존 방안을 고민해보는 전문가 좌담회가 정달식 부산일보 문화부장의 사회로 19일 오후 부산일보사 4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전문가들은 피란수도 부산 시절 문화예술 콘텐츠가 이후 부산 문화예술계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지만, 자료 상당수가 유실된 점을 안타까워했다. 이를 체계적으로 발굴·보존하고 후세대에 알려 나갈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데 한목소리를 냈다.
김창욱 부산시의회 정책연구위원
음악 등 피란수도 콘텐츠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
옛 문화극장·김종식 자택
市가 나서서 매입·보존을
김형균 부발연 부산학센터장
중구 전체 '지붕 없는 박물관'
SNS 통한 홍보방법 고민을
보수동골목축제·영도다리 등
기존 축제와 연계 '효율적'
이순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임시수도기념관 확대 재편
문헌·구술 아카이브 구축
-피란수도 부산 관련 문화예술 콘텐츠를 적극 발굴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한근=옛 문화극장 건물과 고(故) 김종식 화백 자택은 피란수도 부산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매입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 영화 '국제시장' 촬영장소 물색 당시 당대를 담아낼 수 있는 곳이 없어 결국 세트장을 따로 지었다. 피란수도 부산을 영상으로 그릴 수 있는 영화 장소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김형균=대구 향촌문화관의 경우 전시물 대부분이 임시수도 대구 시절의 기록들이었다. 단 31일간 임시수도 역할을 맡았던 대구 전시물들은 3년 이상 피란수도 역할을 했던 부산보다 훨씬 풍부했다. 곳곳에 흩어져있는 역사적 자산을 모아내야 한다. 중구 전역을 대상으로 관련 문화예술 콘텐츠와 장소를 발굴해낸다면 엄청난 영향력이 있는 문화 관광 지역 자산이 될 것 같다. 피란수도 통째로 박물관을 만드는 '지붕 없는 박물관'도 떠올려봤다.
△이순욱=임시수도기념관 자체를 확대 재편성해서 큰 범주에서 피란생활사박물관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항 이후 근대 모순을 응축한 공간이 부산이다. 부산엔 근대역사관과 민주공원, 1960년 4월 혁명, 부마민주항쟁 등이 다 있는 곳이다. 콘텐츠 확보를 위해 전담팀을 구축하자.
-잠정목록 등재 재심의가 오는 12월로 미뤄졌다. 무엇이 문제인가.
△김한근=지표조사부터 들어갔어야 했다. 피란수도 부산의 정신이 담기고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장소를 위주로 해서 접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대단히 크다.
△김형균=근대 자산이 그 당시 목적을 위해 지어진 것도 있지만 전쟁이라는 긴급상황에서 긴급활용자산이 된 것도 상당수다. 일제강점기 건조물을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피란민을 수용하고 행정기능 수행하기 위해 긴급 활용한 자산인 것이다. 하지만 개별 건조물로 들어가니 설명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피란 당시 스토리가 별로 없다 보니 피란수도 당시 역할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했다.
△이순욱=부산시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건축물만을 대상으로 피란수도 세계유산에 등재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피란수도가 실제 부산의 지역적 재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 건축물 자체가 아닌 권역 전체로 넓혀 풀어내 볼 만하다. 이중섭 화가의 은지화에는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이 빚어낸 예술이 면면이 녹아 들어있는 대표적인 예다. 영도다리의 경우 자체의 상징성도 있지만 전쟁기 피란민의 이별, 기다림, 회한으로 다리 자체가 분단의 모순을 함축하고 있다.
-피란수도 부산 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방법은 있을까.
△김창욱=관련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개발해 활성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독서토론이나 스토리텔링 책자를 발간하고 당시 상황을 극화하거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음악의 경우 유명한 전쟁 가요를 오케스트라화해 변주하거나 다양한 당시 스토리 원형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뮤지컬을 제작하는 등 브랜드가 될만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도 절실하다.
△김형균=학술적으로 엄밀하게 고증하는 접근도 중요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내는 것도 중요하다. 후세대들이 피란수도에 대해 공감하고 공유하는 게 절실하다. 젊은층은 사진을 찍어 바로 SNS에 올린다.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SNS를 통해 공유할 수 있도록 표석이나 사진 안내문을 만들고 시대 흐름에 맞는 디자인 작업도 동반돼야 한다.
△박미욱=기존의 축제를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보수동골목축제, 영도다리 축제, 피란수도 야행 등 관련 행사에 대한 시민들 반응이 폭발적이다. 피란수도 야행 당시 부민동이나 임시수도기념관을 처음 찾는 사람도 꽤 있었다. 전쟁에 대한 기억을 체화할 수 있는 참여 행사가 좋은 것 같다. 시와 구, 관광공사가 통합 운영하고 축제끼리 연계된다면 효율적일 것이다. 당시 문화예술의 현장을 매입하는 게 힘들다면 당시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이정표를 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이순욱=피란수도 부산 유산이라고 했을 때 대중에게 알리고 싶거나 공유하고 싶거나 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시민사회나 부산시가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흩어져 있는 유산을 어떻게 찾아내고, 모아낼 것인가.
△김형균=피란수도의 생활문화를 집적해내는 조직이 있었으면 좋겠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운영의 성공사례를 교훈으로 삼았으면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민간 거버넌스가 강조된다. 민간을 중심으로 한 조직화가 필요하다. 피란수도문화예술을 보존하는 조직위원회 정도 될 것이다. 피란수도 문화예술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박미욱=부산시에서 부산 스토리텔링 원형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하고 있다. 부산시사편찬위원회에도 구술작업을 꾸준히 작업 중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곳에서 자료를 수집 중이다. 여러 기관의 활동을 유기적으로 이어나가고, 자료를 모으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순욱=아카이브 구축이 절실하다. 문학의 경우 전쟁기 당시 매체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통계자료도 없는 실정이다. 당대 삶을 재구성하는 원천 자료 기능을 하는 문헌과 당대 삶을 역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구술 아카이브가 동시에 구축돼야 한다. 종교인과 교육자들이 가진 자료, 학교 교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카이브를 구축하다 보면 부산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는 킬러 콘텐츠가 발견될 수 있다. 해외와 비교해도 이처럼 문화예술이 집약된 곳은 없다. 피란수도 부산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문화행정에 중요하다고 판단된다면 이 모든 기획을 집행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중복 예산 투입을 막을 수 있다. -끝-
정리=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일시: 2017년 9월 19일 오후 5시
장소: 부산일보사 4층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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