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6>
『인저리타임』 2017. 10. 30
가곡 「명태」의 작곡자 변훈(邊焄 1926-2000)
벌써 겨울이 왔나 보다. 간밤에 바람소리가 사방천지에 요란하더니, 아침 나절 추위도 만만찮다. 뉴스에서는 올 가을 들어 제일 추운 날이란다. 이런 날에는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공기밥과 뜨거운 국물이다. 아니면, 밥과 명태와 김치를 한데 넣어 부글부글 끓인 명태국밥도 제격이다.
그 다음에 떠오르는 것은, 바로 변훈 작곡의 「명태」다. 어느 겨울,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다 얼큰하게 기운이 오른 바리톤 친구가 불러준 노래다.
"… 짝짝 찢어지는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 명~태, 헛 명태라고 / 헛,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양명문 작시).
그는 "쇠주를 마실 때"에 이르러 '카아~' 하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동시다발적으로 소화해 냈고, 마른 명태를 쫙쫙 찢어대는 시늉까지 완벽하게 연출했다. 여기에 아낌없이 갈채를 보내준 포장마차 아줌마는 더할 나위없이 성실한 관객이었다.
나는 지난 주 어느 시민강좌의 강사로 나섰다. 거기서 「명태」를 소개했는데, 그 반향은 예상과는 달리, 매우 열광적이었다.
한국전쟁 시기였던 1952년 부산에서 발표된 「명태」는 지금도 그다지 익숙한 양식의 노래가 아니다. 익살스런 자유시를 노랫말로 선택한 점, 부가화음으로 3화음의 정형성을 탈피하려 한 점, 일관작곡(一貫作曲) 형식에 파를란테(parlante·말하듯이 노래하는 기법)와 포르타멘토(portamento·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옮겨 갈 때 미끄러지듯이 연주하는 기법)를 씀으로써 그 이전 홍난파·현제명 류의 선율적·서정적 노래에서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노래가 처음 발표된 이튿날, 신문에는 이에 대한 어느 평론가의 글이 실렸다. 요지는 "이것도 노래냐?"였다.
모처럼 나섰던 시민강좌는, 비록 빈 자리가 많았고, 고객으로 백발 성성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오히려 내게는 새삼 용기가 샘솟았던 무대였다. 그 분들은 내 이야기에 기꺼이 토끼 귀가 되어주었고, 어떤 분은 내 말을 노트에 빼곡이 받아 쓰기도 했다. 더욱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질문 공세는 강의실 분위기를 한층 뜨겁게 달궜다.
덕분에 나는, "이것도 강의냐?"는 한 마디를 끝내 듣지 않았고,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강의료를 챙길 수 있었다.
명태
김창욱 음악평론가·부산시의회 정책연구위원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점이 (0) | 2017.11.10 |
---|---|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0) | 2017.11.03 |
소녀의 기도 (0) | 2017.10.25 |
마왕의 동굴 (0) | 2017.10.14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0) | 2017.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