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에서 손님들이 내려왔다. 김수영문학관 사람들이다. 시인의 시비(詩碑) 건립사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알고 보니,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은 부산과 인연이 매우 깊다. 오늘날 부산시청 일대가 한국전쟁 때 부산거제리포로수용소였고, 그는 여기서 3년 가까이 포로생활을 했다. 내년이 김수영 탄생 100주년이다.
김수영의 시로는 '풀', '폭포', '하... 그림자가 없다', '눈',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등이 특히 두드러진다. 그러나 나는 그의 '푸른 하늘을'(1960)을 최고 대표작으로 꼽는다. 그의 삶과 문학, 그 정수(精髓)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020. 6. 13 들풀처럼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김수영 전집 1》(민음사, 2011), 190쪽.
김수영은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 시절을 ‘시인이 겪은 포로생활’이라는 산문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해군·해병대 통합 기관지 ‘해군’ 1953년 3월호).
“포로생활에서 거제리 14야전병원은 나의 고향 같은 것이었다. 거제도에 와서 보니 도무지 살 것 같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너무 서러워서 뼈를 어이는 설움이란 이러한 것인가! 나는 참다못해 탄식을 하고 가슴이 아프다는 핑계로 다시 입원을 하여 거제리 병원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특히, 이 글에서 그는 “거제리 수용소에서 나는 삼 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게 되었다”고 언급함으로써 포로생활의 대부분을 거제도 수용소가 아닌, 부산 거제리 수용소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더욱이 그는 1953년 환도 전 10개월 간에 걸쳐 동구 수정동에서 기거했고, 1968년에는 부산에서 열린 펜클럽 문학세미나에서 ‘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주제발표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바 있을 만큼 부산과도 인연이 깊다.
'민의의 전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인 김수영 시비 건립 촉구 (0) | 2020.06.17 |
---|---|
김수영 시비(詩碑) 건립 촉구 (0) | 2020.06.17 |
설명회 풍경 (0) | 2020.05.29 |
부산시의회사무처 임기제공무원 임용시험 (0) | 2020.04.24 |
시의회 이벤트 (0) | 2020.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