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벤자민 프랭클린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것이 세금과 죽음이라 했다. 특히 죽음 앞에서는 돈이나 권력, 명예 등 여지껏 인간이 지향해 온 모든 것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음을 애써 외면한다. 나와는 무관한 어떤 것 쯤으로 막연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저에는 불안과 공포가 잠재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아비도 그 자식을 구하지 못하고 친척도 그 친척을 구하지 못한다. 사람은 하나씩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사라져 간다(숫타니파타).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 하릴없이 죽음에 끌려 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곧바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 5단계의 과정을 거쳐 어쩔 수 없이 수용한다. 그 첫 단계는 '부정'이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아예 부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멀쩡했던 내가 왜 죽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다 두 번째 단계에 이르면, '분노'한다. 내가 죽게 됐다는 사실에 절망한 나머지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 가족이나 의료진 때문이라는 등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나아가 세 번째 단계는 '타협'이다. 부정하고 분노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달 뒤 딸 결혼식까지 살게 해 준다면 무엇이든 하겠다', '이번 한 번만 살려준다면 앞으로 열심히 교회에 나가겠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게 된다. 마지막 네 번째는 '우울' 단계다. 이제 더 이상 죽음을 피해 갈 수 없음을 알게 되고, 결국 절망상태에서 임종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학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 퀴블러 로스의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에 그렇게 나와 있다. 죽음에 끌려 가지 않고, 주체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리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2022. 5. 27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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