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치다

사하문화사랑방이 떴다

浩溪 金昌旭 2013. 3. 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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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4 20면

 

 

[시민이 문화다] <1> 사하문화사랑방

"주민과 예술인들이 만나고 어울리는 자리 만들어요"

 

▲ 지난 1일 낮, 정기모임을 가진 사하문화사랑방 회원들이 올해 포부를 밝히며 활짝 웃고 있다. 김병집 기자 bjk@

 

산업으로서의 문화는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문화 본연의 자발성과 창조성은 이제 싹을 틔우는 단계다. 본보는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직접 자신들의 삶과 생각을 문화예술로 표현하는 사람들, 개인이 아닌 공동체 단위로 다양한 문화활동을 벌여 나가는 사람들을 연중 기획으로 집중 조명한다. '사람이 문화다'를 통해 더 많은 문화의 씨앗이 퍼져 문화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숲을 이루고, 도시의 창조성이 활짝 꽃피우기를 기대한다.

 

사무실이 없다. 당연히 상근 직원도 없다. 하지만 '번개'모임이 잡히면 어디선가 사람들이 몰려들고, 주기적으로 일을 벌인다. 이 '요상'한 모임의 정체는 뭘까?

 

창작과 연주에만 매진하는 예술인들이 막상 발표할 무대를 찾지 못해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행정 업무를 처리해 본 경험도 부족하다. 반면 주민들은 지역에 예술인은 많은데 왜 이렇게 접할 기회가 없느냐고 하소연이다.

 

 

'살기 좋은 마을 만들자' 모토

지역 치과원장 등 공동대표

청소년들 예술교육 후원

'시민오케스트라' 9일 창립

미협·음협 가세 수준 높아져

 

 

이런 현실을 보다 못해 3년 전 부산 사하구에 살고 있는 예술 애호가들과 몇몇 주민이 모여 매개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사하문화사랑방.' 36만 사하지역 주민이라면 누구든 격의 없이 들러 만나고, 문화를 매개로 교류할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이들이 모인 취지였다.

 

이 모임을 처음 제안하고 지금까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치과원장 최우석 씨는 "주민들과 예술인들이 편하게 만나고 어울리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예술인만의 예술에 머물러서는 주민들의 삶 속으로 녹아드는 문화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거주지나 일터가 사하구에 있는 OK오병원 김영준 원장(공동대표·사단법인 희망나눔 이사장), 환경문화연합 이유상 대표 등도 같은 생각이었다.

 

 

■ 청소년 교육-문화나눔 활발

 

 

그래서 '문화와 예술을 통해 살기 좋은 우리 마을을 만들자'는 사하문화사랑방의 모토가 만들어졌다. 이런 모토의 실현을 위해 가장 먼저 눈길이 머문 곳이 청소년사업. 청소년, 특히 저소득층 학생들이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맡으면 그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역 내 15개 지역아동센터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해 500명 이상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알차게 운영하고 있다.

 

문화나눔 활동도 쉼없이 진행되고 있다. 빛을 보지 못한 연주자나 작가를 발굴해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주민들을 모아 공연을 보러 멀리 해운대까지 다니기도 한다. 해마다 하려던 을숙도 광장음악회는 지난해 대형 정치 이벤트가 많아 한 해 쉬었다. 대신 을숙도문화회관을 대관해 발레공연을 하기도 하고, 국제어린이영화제 출품작을 상영하기도 했다.

 

활발한 활동 덕분에 창립 직후 140명 정도이던 온라인 회원이 이제 300명에 육박할 만큼 성장했다. 오프라인 모임에도 구의원, 공연기획자, 화가, 주부 등 다양한 직업군이 20~30명 정도 참여한다.

 

오는 9일 창립 콘서트를 갖는 부산시민오케스트라도 사하문화사랑방에서 태동했다. 시립교향악단도 있고, 민간오케스트라도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있지만 상업적 지향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시민이 주인되는 민간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모태였다.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창립에 이르렀고, 최 원장이 초대 운영위원장을 역임한 뒤 지금은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평론가 김창욱 씨가 음악감독이다. 김 씨는 "시민오케스트라가 안착하면 청소년 오케스트라나 합창단도 함께 만들어 시민음악재단 같은 큰 형태로 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해 9월 사하문화사랑방은 사랑방을 포괄하는 지역 문화운동조직을 띄웠다. '사하문화연대'로 이름 붙은 이 조직은 기존 사랑방에다 미술협회와 음악협회 사하구지회가 가세했다. 지회 소속 예술인들이 적극 문화나눔에 참여하면서 내용과 질이 훨씬 풍부해졌다. 부산오페라하우스와 같은 문화예술계의 큰 현안을 비롯, 지역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랑방 사람들은 "감천문화마을이 사하구에서는 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했다. 바깥에 보여 주기 위한 마을 꾸미기가 아니라 주민들의 삶이 내면에서부터 풍요로워져 자연스럽게 겉으로 드러나면 관광객이 저절로 모여든다는 것. 요지는 겉이 아니라 속이다. 이런 의식은 사하지역의 정체성과 현실에 대한 인식에도 맥이 닿아 있다. 인재와 자원은 많은데 흩어져 제각각 움직이고 있다. 사하구를 비롯한 서부산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으로 비치는 이유다. 예술인과 주민을 잇는 것처럼, 여러 단절된 것을 잇는 것이 사랑방의 또 하나의 소임이라고 이들은 생각한다.

   

 

■ 지역 전문가 육성·재원 확대 과제

 

 

그런 점에서 사랑방 사람들은 지역 밀착형 전문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현장 예술인들이나 활동가들이 아이디어나 불편사항을 제기하면 체계화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 그런 전문가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부산 전체, 혹은 전국적 이슈를 다루다 보니 지역 현실에 맞는 '맞춤형 처방'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결국 지역에 뿌리내린 현장 예술인들 가운데서 전문가를 키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발언권도 필요하다.

 

공동대표단 등 고액 후원자 몇 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단체의 재원 확충도 당면한 과제. 주민들의 문화참여 수준이 확대되는 상황에 맞춰 소액 후원회원 모집이나 후불제 도입 등은 검토해 봐야 할 대목이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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