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힐링을 다녀오다. 창녕 법화암(法華庵)이다. 영산읍을 거쳐 구계리(九溪里)를 지나 1KM의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법화암과 대웅전, 삼성각(三聖閣), 그리고 운치 있는 해우소(解憂所)가 나타난다. 거기서 다시 급경사의 고샅길을 따라 20여 분을 올라가면, 비로소 힐링장소인 관음전(觀音殿)이 나온다. 오랫만에 108배를 행하니, 눈과 귀가 밝아진다. 관음전 앞에서, 서기 어린 영산의 풍경 하나 겨우 담을 수 있었다. 2013. 6. 22 법화암 관음전에서.
포토 바이 들풀처럼. 관음전에서 바라본 영산.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며칠 째 청산에 와 발을 푸니
흐리던 산길이 잘 보인다
상수리 열매를 주우며 인가(人家)를 내려다 보고
쓰다 둔 편지구절과 버린 칫솔을 생각한다
남방(南方)으로 가다 길을 놓치고
두어 번 허우적거리는 여울물
산 아래에는 때까치들이 몰려와
모든 야성(野性)을 버리고 들 가운데 순결해진다
길을 가다가 자주 뒤를 돌아보게 하는
서른 번 다져두고 서른 번 포기했던 관습들
서쪽 마을을 바라보면 나무들의 잔숨결처럼
가늘게 흩어지는 저녁연기가
한 가정의 고민의 양식으로 피어오르고
생목(生木) 울타리엔 들거미줄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
실로 이 세상을 앓아보지 않은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
- 이기철, '靑山行'(민음사,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