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가 낼 모레다. 사상 처음으로 사전투표라는 것도 실시되고 있다. 후보는 후보대로, 정당은 정당대로 전략을 짜고, 광고도 하고, TV토론도 한다. 어제 웃으며 악수를 나누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비난도 하고, 흑색선전도 하고,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즉생, 생즉사,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비장감마저 엿보인다. 때때로 눈물을 짜내기도 한다. 안전이니, 복지니, 경제니 거품도 문다. 평소 존재감 없던 인물이 앞다퉈 자칭 전문가 행세를 한다. 다들 살판 났다. 그래서 누가 진짜고 누가 짝퉁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알아두자. 지난날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살아왔는지를! 안전·복지·경제를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갈등하고 실천해 왔는지를 제일 먼저 살펴보자는 거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해온 사람을 골라보자는 거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전선에서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를 분명히 가려낼 때다. 갈등해소니 국민통합이니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2014. 5. 30 들풀처럼. 金洙暎(1921-1968)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커크 더글러스나 리처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요릿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 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전선은 당게르크도 노르망디도 연희고지도 아니다 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 그것이 우리들의 집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초토작전이나 <건 힐의 혈투>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환담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 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수업을 할 때도 퇴근시에도 사이렌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그림자가 없다 하…… 그렇다…… 하…… 그렇지…… 암암 그렇구 말구…… 그렇지 그래…… 응응…… 응…… 뭐? 아 그래…… 그래 그래. <1960. 4. 3> 김수영, '하…… 그림자가 없다', 『김수영 전집』제1권(민음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