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낙엽의 계절이며, 여행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을은 추억과 낭만의 계절이라 할 만하다. 어디 그 뿐이랴? 가을은 축제의 계절인 동시에 독서의 계절이기까지 하다. 디오니소스에서 아폴론까지의 다양하고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여느 계절과 달리 유난히 많은 수식어를 단 가을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좋은 시기임을 말하는 것이리라.
'아! 가을인가'는 윤복진(尹福鎭)의 시에 나운영(羅運榮 1922-1994)이 선율을 붙인 노래. 한국 서양음악 2세대 작곡가인 나운영은 1939년에 가곡 '가려나'로 데뷔했다. 그는 한국음악의 토착화와 현대화에 평생동안 관심을 기울였다(先토착화, 後현대화). 2014. 9. 27 들풀처럼. http://www.음악풍경.com/
김영환(테너)과 김은경(소프라노)이 부르는 '아! 가을인가'
<보기 1>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봐
물동이에 떨어진 버들잎 보고
물 긷는 아가씨 고개 숙이니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봐
물동이에 떨어진 버들잎 보고
물 긷는 아가씨 고개 숙이니
<보기 2>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봐
둥근 달이 고요히 창을 비치면
살며시 가을이 찾아오나 봐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봐
가랑잎이 우수수 떨어지면은
살며시 가을이 찾아오나 봐
<보기 1>은 학창시절에 배운 '아! 가을인가'의 가사다. 김수경 작사, 나운영 작곡으로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노래를 요즘 학생들에게는 <보기 2>와 같은 가사로 가르치고 있다. 이 곡은 음악교과서를 보면 나운영 작사, 작곡으로 되어 있다. 작사자와 함께 가사가 일부가 바뀐 것이다. 왜 바뀌었을까?
더 의아한 것은 나운영의 '아! 가을인가'에 앞서 박태준이 똑같은 가사를 가지고 작곡한 '아! 가을인가'가 있는데, 그 곡은 윤복진 작사로 되어 있고 작사자가 월북하였다는 이유로 한때 금지되었던 노래라는 점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윤복진이 작사한 '아! 가을인가'와 김수경이 작사한 '아! 가을인가'는 같은 것인데, 윤복진이 작사했다고 한 것은 금지되었고, 김수경이 작사했다고 한 것은 교과서에 수록되어 범국민적인 애창곡이 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답은 아주 엉뚱한 데 있다. 윤복진의 필명은 김수향(金水鄕)인데, 곡을 발표할 때 박태준은 작사자의 이름을 윤복진이라는 본명을 썼고, 나운영은 작사자의 이름을 김수향이라는 필명으로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악보집에 김수향의 '향(鄕)' 자가 '경(卿)' 으로 잘못 나온 것이다. 이 실수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박태준이 작곡한 '아! 가을인가'는 월북한 윤복진이 작사한 것이라 해서 금지되었고, 김수경 작사로 잘못된 나운영의 '아! 가을인가'는 널리 애창이 되었다.
그러다가 김수경이 곧 김수향이고, 본명이 윤복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가사를 바꾸어야만 했다. 하지만 너무 유명해져서 원 가사를 바꾸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할 수 없이 원가사의 이미지를 살려 작곡자가 직접 개사를 했는데, 이렇게 만들어 진 것이 나운영 작사, 작곡의 '아! 가을인가'다. 따라서 지금 배우는 '아! 가을인가'는 나운영 작사가 아니라 나운영 개사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 민경찬, 『청소년을 위한 한국음악사』(양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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