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한국해양대에서

浩溪 金昌旭 2015. 10. 22. 11:37

 

엊그제 한국해양대학교에서 특강을 했다(2015. 10. 20 미디어홀). 문학평론가 구모룡 교수께서 친히 초청해 주신 덕분이다. 해양대는 고등학교 시절에 겨우 한 번 들렀던 곳. 오랜만에 교정을 한 바퀴 휘~ 돌았는데, 바로 앞에 캡틴 김성식 시인의 시비가 우뚝 서 있다. 그의 「청진항」은 아주 오랜 옛날, 유쾌하게 읽었던 시다. 알고 보니, 그는 이 학교 출신. 다만, 시비에 대표작 「청진항」이 새겨져 있지 않아 다소 아쉬운 터였다. 2015. 10. 22

 

포토 바이 김창욱. 해양대 입구에 들어서며.

 

포토 바이 김창욱. 미디어홀의 무대풍경.

 

포토 바이 김창욱. 미디어홀의 객석풍경.

 

  

배를 타다 싫증 나면

까짓것

淸津港 導船士가 되는 거야

 

오오츠크에서 밀려나온

아침 海流

東支那에서 기어온

저녁 海流

손 끝으로 만져가며

 

회색의 새벽이

밀물에 씻겨 가기 전

큰 배를

몰고 들어갈 때

 

신포 차호로 내려가는

명태 잡이 배를 피해

나진 웅기로 올라가는

석탄 배를 피해

여수 울산에서 실어 나르는

기름배를 피해

 

멋지게 배를 끌어다

중앙 부두에

계류해 놓는 거야.

 

청진만의 물이 무척 차고 곱단다

겨울날

감자떡을 들고 갯가에 나가노라면

싱싱한 바다 냄새

더불어

정어리 떼들 하얗게 숨쉬는 소리

엄마 가슴에 한아름 안기지만

이따금 들어오는 쇠배를 보느라고

추운줄 모르고 서 있었단다.

 

잘익은 능금 한덩이

기폭에 던져 놓고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은 별들

기폭에 따다 넣고

햇살로 머리 비낀

무지개를 꺾어 달고

 

오고 가는 배들이

저마다 메인 마스트에

태극기 태극기를

 

올 엔진 스탠바이

훠 샷클 인 워터

렛고우 스타보드 엥카.

 

방파제 넘어

닻을 떨어뜨려

나를 기다리면

 

얼른 찾아가

나는

굿 모닝! 캡틴

 

새벽별이 지워지기 전

유리시즈의 항로를 접고서

에게를 넘어온 항해사

태풍 속을 헤쳐온 키잡이

카리브를 빠져온 세일러를 붙잡고

 

주모가 따라주는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을 건네면서

여기 청진항이 어떠냐고

은근히 묻노라면

 

내 지나온 뱃길을 더듬는 맛

또한

희안하겠지

 

까짓것

배를 타다 싫증나면

청진항 파일롯 되는 거야

 

 - 金盛式, 「淸津港」(1971年 朝鮮日報 新春文藝 當選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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